성소수자 부모모임 23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8-12 오후 18:03:29

성소수자 부모모임 스물세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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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 2월 13일 토요일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늘: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나은행: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초록이: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박장군 어머니)

- 라라: 트랜스젠더 딸을 둔 어머니

- 영한: 양성애자 아들을 둔 아버지

- 샤넬: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모리: 게이(가족이 다 알고 있음)

- 오소리: 양성애자(누나만 알고 있음)

- 바람: 게이(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아인: 레즈비언(부모님이 알고 있음)

- 화영: 레즈비언(부모님이 알고 있음)

- 박장군: 레즈비언(어머니와 남동생이 알고 있음)

- 희은: MTF 트랜스젠더(부모님이 알고 있음)

- 한나: 여성 성소수자(가족이 전혀 모름)

- 쉬리: 레즈비언(가족이 전혀 모름)

- 혜경: 이성애자

- 낫쏘: 게이(어머니와 여동생이 알고 있음)

- 미완: 레즈비언(가족이 전혀 모름)

- 지영: 레즈비언(부모님이 알고 있음)

- 티이락: 게이(부모님이 전혀 모름)


 

사회: 어나더

속기: 모리, 오소리



 

어나더: 어나더미이고 스물 두살이고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부모님에게 의도치 않게 아웃팅을 당해서 지금은 집에서 나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창현: 스물 다섯 살이고 행성인에서 활동 중입니다.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나: 삼십대 중반이고 여성 소수자입니다. 알게 된 지 8년 정도 됐는데 어머니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에요. 술도 못 먹을 정도로. 오소리님의 추천으로 오게 됐어요. 20대부터 혼자 살고 있습니다. 가족은 지방에 살고 있고요.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엄마이고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온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쉬리: 스물 한 살 공대생이고 레즈비언입니다.

 

하늘: 동성애자 아들을 둔 엄마에요.

 

하나은행: 만나서 반가워요.

 

초록이: 처음 소식을 듣고 2년 전에 처음으로 참석했다가 아이에게 다시 연락이 와서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마음이 편하고자 왔어요.

 

박장군: 서른 두 살이고 박장군이라고 합니다.

 

화영: 화영입니다. 여기 적혀있는 부모님 소개 보고 혼자서 울컥했어요. 어머니들 너무 멋있으세요.

 

아인: 직장인이고 행성인 회원이에요. 부모님과 친한 일부 직장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했고요. 부모님이 지방에 계셔서 언젠가 먼저 모셔오고 싶어요.

 

바람: 스물 두 살이고, 어머니에게 커밍아웃 했어요. 그 후로 지금은 냉전상태에요.

 

희은: 서른 한 살이고, 여자인데 몸은 남자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오소리: 양성애자이고 누나에게만 커밍아웃한 상태에요.




 

어나더: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 얼마 전이 설날이었는데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지.

 

희은: 혼자서 집에 있었어요.

 

박장군: 저는 부모님에게 죄송하지만 애인 만나러 미국 갔다 왔어요. 장거리 연애 중이어서.

 

화영: 저는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다 했고 어머니 칠순 생일에 커밍아웃했어요. 어머니는 네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셨고요. 파트너와 9년 차에요. 처음엔 잘 보이고 싶어서 명절 전에 선물도 보내고 그랬는데 이젠 잡아 놓은 물고기라서 선물만 보내고 있어요. 파트너와 저는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전을 부쳐 먹어요. 6일 연속으로 쉬었는데 최고로 행복한 연휴였어요. 영화보고 사람들 만나서 놀고 혼자서도 쉬고.

 

아인: 저는 집에 혼자 있었고 부모님이 각자 이혼하셔서 가족이 따로 있어요. 어머니는 연락이 안되고 해서. 최근에 몸도 안 좋고 해서 집에서 잘 쉬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한나: 저는 저번 달 말에 집에 내려갔었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었고 강아지랑 시간 보내고 친구 만나고 쉬었습니다.

 

티이락: 외국에서 살다가 설날 맞아서 한국 왔어요.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고요. 부모님에겐 커밍아웃 안 했고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하늘: 저는 우리 아들이 와 있어서 어떻게 하면 맛있는 걸 해 먹일까 하다가 아들 가고 나서는 드러누웠어요. 남편이 아들만 챙긴다고 그래요. 아들 파트너는 익산에 내려가서 같이 못 왔고. 걔네가 주말 커플이라 알아서 만나라고 아들을 보냈어요.

 

지인: 저는 애들이 다 미국에 있어요.

 

라라: 시댁이랑 친정이 다 대전이라, 인천으로 이사온 지가 얼마 안 돼서 명절 교통 채증을 처음 겪었어요. 가는데 4시간 올 때 6시간. 작년 겨울에 저희 집에 큰 사고가 있었어요. 별아가 자살 시도로 병원에 오래 있었는데 가족들이 잘 몰라요. 지난 추석에는 무단으로 시댁에 안 간 며느리가 돼 있어요. 어머니는 별로 안 좋게 생각 안 하시는데 동기간에는 궁금해하죠. 그걸 이야기를 하고 싶긴 한데 왕래도 없었고 소통이 없었는데 말하기가 뚱딴지같아서 안했어요. 부모모임 사람들보다 더 먼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음식은 많이 해서 나눠 먹기는 했는데. 살만 3kg 쪘어요.

 

쉬리: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전혀 안한 상태여서. 외가에 갔는데 할머니랑 엄마께서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구요. 아직 어린데 그러냐고 그랬더니 대학 갔으니까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했으면 좋겠다고. 되게 멍하고. 그 이후로 활동들도 찾아보고 이 모임에도 나오게 됐어요.

 

배지현: 할머니 댁에 가서 조용히 있다가 왔어요.

 

미완: 작년 부모모임 출간회에 혼자 갔었는데 좋은 이야기 많이 들어서 한번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요. 연휴 땐 가족들과 그냥 즐겁게 보냈어요. 가족들에겐 커밍아웃을 안 했고 5년 정도 후에 제가 자리 잡고 나서 잘 커밍아웃 하려고 참석했어요.

 

박장군: 엄마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떻게 보냈는지 몰라요.

 

초록이: 저는 애를 다정다감하고 화초를 키우듯이 신경을 썼어요. 어디 나가도 믿었어요. 그리고 아이한테 항상 하는 이야기가 네가 책임지지 못할 행동은 안 할 거라고 믿어. 라고만 하고 대화를 길게 하지 않아요. 엄마 말에 애교도 부리고 싹싹하고 그런 걸 한번도 받아 보질 못했어요. 우리 아이는 씩씩하고 건강하고 모범적이고 솔선수범 하는 아이였어요. 내 아이지만 크게 될 아이구나 생각을 했어요. 멋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난 추석 명절에도 우리 애가 잠깐 왔다 갔어요. 보내면서도 우리 아이를 이해하긴 해요. 내가 마음이 무거울지라도 잘 가, 또 보자 했는데. 이번에도 얼굴이나 잠깐 보려고 문자를 했는데 못 온대요. 미국에 간대요. 그렇구나 잠깐 갔다 와 했어요. 올 시간 돼서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까 언제 온다고. 다른 애들 같으면 몇 시에 온다고 살갑게 할만한데 단답형 문자가 왔어요. 그러면서도 마음은 깊이 흐르는 거라고 알기 때문에 스스로 위안을 찾아요. 가족이 모이는 때인데 안 오니까 섭섭하기도 했어요. 내 마음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도 보고 등산도 하고 시장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그랬어요.

 

박장군: 엄마랑 시간을 자주 보내거나 싹싹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홍대에서 고기를 구워먹다가 커밍아웃을 했어요. 엄마가 당황을 하셨고 처음엔 고민이 많으셨겠죠. 새벽에 카톡이 와 있더라구요.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어나더: 그때 어떠셨는지?

 

초록이: 무거웠어요. 제가 책도 안 보고 인터넷으로도 안 찾아봤어요. 머리 아플 때 책을 안보잖아요. 우리 아이의 달라진 모습,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이런 상황에 있는 젊은 사람도 많을텐데, 행복한 모습들을 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우리 아이를 이해하고. 파트너가 꼭 남자여야 하는 법은 없구나. 여자를 만나도 행복하다면 이게 행복이구나. 지지해줘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어요. 아이가 속앓이를 할 때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게 마음이 아파요.

 

어나더: 2년 간의 변화가 있으셨네요.

 

초록이: 2년 간 제가 좀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와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더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 동생한테도 이야기하고 친한 동생에겐 털어놨어요. 그 동생이 자식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자기 생각이 올바르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굳이 막으면 서로가 불행해진다고, 아이 의사는 고민하지도 말고 인정을 해주래요.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안 그러면 세상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든데, 정말 힘든 짐을 나 스스로 짊어지고 갈거냐고, 아이를 인정해주라고.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면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애가 변하지 않을까, 질문하기도 하는데, 아이를 믿어요.

 

박장군: 부모님한테는 커밍아웃을 여러 번 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처음엔 알겠다고 했다가 다음날 문자로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다가 다음엔 또 지지한다고 했다가 등등.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던 것 같아요. 항상 말씀은 지지한다고 하셨고,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제 동생한테도 털어놓으셨고. 그런 고민이 든다는 것 자체가 속으로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우리 정체성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 듯 부모님에게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근데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믿어요.

 

지인: 동생의 반응은 어땠어요?

 

초록이: 제가 표정이 안 좋으니까 알더라구요. 그래서 털어놨어요. 엄마, 자기 인생은 다 자기가 살아가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변하면 변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라고 냉철하게 이야기 하더라구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따뜻하게 말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딱 잘라서 말하더라구요. 근데 그게 더 좋았어요. 요즘 사람들은 다르구나. 누나 인생이니까 엄마도 엄마 인생 건강하게 지내면 된다고. 아빠가 고민이에요.

 

화영: 남편이 알게 되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초록이: 드러누울 것 같아요. 근데 기본은 사랑이잖아요.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모임에 나오면서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 계속 나오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요. 다들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시라.

 

지인: 처음 아시게 되셨을 때의 반응은 저보다 훨씬 나으세요.

 

지영: 19살 엄마 아빠 두분 다에게 커밍아웃 했고 레즈비언이에요.

 

영한: 권영한이고 대학 1학년 들어가는 양성애자 권민 아빠입니다.

 

하나은행: 저도 애들 해 먹이느라고 실컷 일하다가 다음날 앓아 눕고 다음날 살아나고. 똑같아요.

 

모리: 이경(하나 파트너)에게 연락이 왔는지?

 

하나은행: 안 왔어요. 여행 가느라.

 

화영: 저한텐 왔던데.

 

하나은행: 여행하느라 바빴을 거예요. 아, 하나 애인이 맛있는 거 먹으라고 보내줬어요.

 

화영: 엄마들은 왜 앓아누우면서도 해 먹이시는지.

 

하나은행: 남편도 그러더라구요. 애들만 보면 왜 그렇게 환장을 하냐고.

 

하늘: 모성 본능은 끊을 수가 없어요. 상처를 받아도, 아파서 누워 있어도 아들 온다고 하면 발딱 일어나서 시장 보고 해 먹이고. 나가 있으면 잘 못 먹을 것 같아서. 정말 자주 오는 건 아니거든요.

 

화영: 괘씸하지 않으세요?

 

하늘: 그것도 내려놨어요.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적어요. 갈 때는 혼자 가요. 그래서 다 내려놨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자녀 분들이 막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화영: 저희끼리도 집에 갔다 왔느냐 이야기 하는데 사실 자식들은 친구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하늘: 내리사랑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받을 수 있을 때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인: 저는 애들 다 크고 나니까 후회되는 게 더 잘해줄걸 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저한테 연락을 너무 많이 하니까 저는 그걸 알아서 연락을 잘 안 하긴 해요.

 

화영: 제가 간다고 하면 계속 준비하고 기다리고 그러시니까 저는 집에 다 도착해서야 간다고 전화해요. 자식이 바쁠텐데 계속 전화하는 게 안 좋은 거라고 하는데, 저희 엄마는 너무 안 하세요. 심지어는 제가 외국에 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엄마 왜? 했더니 언니한테 걸걸 잘못 걸었다고 그냥 끊더라구요. (웃음) 백세인생이라고 해도 20년도 안 남았어요. 다음 주에 가지 뭐 하면서 죄책감은 계속 갖고 있는 상태에요. 애인한테 하는 거 반만 해도 괜찮을 텐데.

 

초록이: (박장군에게) 난 못해줘서 미안하다(웃음)

 

라라: 저도 그래요(웃음)

 

화영: 그래도 김치 싸 가지고 보내주시잖아요.

 

초록이: 그래도 1년에 한번이잖아요.

 

어나더: 화영씨는 커밍아웃을 어떻게 하셨어요?

 

화영: 저는 대학생 때 레즈비언인 걸 알았는데 아냐, 난 남자랑 결혼을 해야 돼, 하면서 생각했었는데 결국은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가족들에겐 이야기 못 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구요. 가족들이랑 놀러갔는데 너무 커밍아웃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고민은 1분도 안 걸렸어요. “엄마 좀 불러오면 안돼?” 했는데 엄마는 주무셨어요. 사실 멋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울부짖었어요. “미안해. 나도 바꾸고 싶었다. 근데 안되더라고.” 하면서. 저는 사춘기가 아니라 대학 때 고민이 왔어요. 이야기를 했는데 다섯 명이 다 똑같은 반응일 수 없잖아요. 저희 언니는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괜찮아, 그게 뭐 어때서.” 이러고. 남동생도 절 다독여줬고. 나머지도 어려운 이야기인데 해줬구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엄마는 언니가 대신 이야기 해줬어요. 카톡으로 엄마한테 이야기 했는데 “엄마는 괜찮대. 서연(화영 파트너)이랑 인연이 있어서 만난거라고.” 그걸 보고 둘이서 울었어요. 서연이도 이제 우리 동생이야 울지마 라고 하고. 커밍아웃 후에 너무 힘들고 후회 됐어요. 근데 열흘 정도 힘들다가 그 이후부터는 세상에 무서운 게 하나도 없어졌어요.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어요. 내 가족이 괜찮다는데. 그 후로는 커미앙웃이 취미가 됐어요. 회사 대표, 대만 본사 대표에게도 커미아웃하고. 그 정도로 떳떳하고 행복해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너무 행복해요. 어머니보다 더 행복할 거예요. 엄마가 인정하니까 엄마가 괜찮다는데. 저희 엄마는 파트너와도 잘 인사하고.

 

어나더: 몇 년 정도 전에 일이에요?

 

화영: 4년 쯤 전이에요.

 

어나더: 그럼 그 사이에 어머니가 본인의 심정을 이야기하신 적은 없으세요?

 

화영: 뭔가 이야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뻘쭘해서 이야기를 못했어요. 근데 집을 나오면서 엄마한테 “엄마 들었지?” 했는데 “얘~ 나는 괜찮아. 걔는 정말 좋은 애야.” 물론 물밑 작업도 많이 했었죠. 소개도 하고. 그래서 엄마한테 고맙다고 했어요. 그 이후로는 사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근데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진 모르겠는데 물어보기 무서워서 이야긴 못하고.

 

어나더: 저는 반대로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실패하니까 그 후로 아무한테도 커밍아웃을 못하겠더라구요. 저는 아직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만 부모님밖에 모르세요. 처음에 가족이라는 좋은 울타리 안에서 인정을 받으면 삶에 여유가 생기는데 반대로 저는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화영: 저도 20대에 말씀드렸으면 그런 반응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부처님한테 감사해요. 독실한 불교 신자시거든요.

 

어나더; 영한님 설날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영한: 지난 부산모임 이후에 민이는 애인이랑 헤어졌고요.

 

어나더: 이번에 부모모임 처음이신데 아드님의 커밍아웃 과정을 들려주세요.

 

영한: 간단히 말하면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유로웠어요. 그러다 그런 고민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더라구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인권, 평등을 생각하면서 독립된 개체의 인간으로 받아들였어요. 저는 노동운동을 하는데, 사전에 그런 교육을 받아서 미리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인정을 했고, 가장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 인정받으니까 친구들에게도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학교에서도 백일장에서 대놓고 드러내요. 학교에서 다 알아요. 연애는 지금 세 번째인걸로 알고 있어요. 고2 때 커밍아웃을 했으니까.

 

어나더: 아드님이 커밍아웃한 지 2년이 됐는데, 아버님에게도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

 

영한: 머리로서 지식이었지, 실제적으로는 아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고, 이것이 나의 문제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다수의 문제고, 소수자들이 억압 받거나 인권 이런 부분에 대해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밖에서 활동하면서, 실제 살아가는 걸 보고. 내리사랑 그대로, 가정을 뛰어넘고 크게 보게 되면 다 자식 같아요. 그래서 결혼하게 되더라도 인정하고, 입양을 해도 자식처럼 키울 수 있다고 얘기하니까 그 정도면 가슴으로 이해하는 정도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어나더: 아드님이 어리셔서 걱정하는 게 있으신지?


 

영한: 청소년기를 지나서 만나는 사람, 접하는 정보에 따라서 성숙된 것 같아요.

 

지인: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 PD수첩 ‘게이, 레즈비언 안녕들하십니까’ 에서 여러 사례들 보여주시면서 좋은 쪽 예로 나오셨어요. 그 이후에 사람들이 더 알게 된 거잖아요. 그 이후에 어떠셨는지.

 

영한: TV에 나오게 된 건, 더 이상 움츠려서 지내면 안된다.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고,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오려던건 아니었는데 민낯으로 나올 수 있는 부모님들이 없으니까. 그래서 민이가 용기를 내고, 저도 용기를 내서 나오게 된 거고. 민이는 탄탄대로였어요. 두려움 없이. 제가 문제였어요. 직장 생활에서 라든지. 오히려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안 그러는데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아는 사람이, 자식 앞길 망칠 일 있냐고 하면서. 자꾸 비치게 되면 회사 이미지상 좋지 않다고 하고. TV 나온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조언도 구했고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갔죠.

 

어나더: 그런 부조리에 대처하기 위한 노하우가 생기셨는지?

 

영한: 평상시에 본인이 잘해야겠죠.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일적인 부분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주위 관계도 좋고 그래야 하는 거지. 막무가내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 같은 경우도 자기 자신이 바로 서고. 자신이 바로 서야 얼굴에 빛이 나요. 자신감도 있고.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어나더: 어머님, 아버님들 이야기 들어봤으니까 당사자들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제가 궁금한 건 한나씨. 어머니가 독실하신 신자시라고.

 

한나: 얼마 전에 생각했는데 커밍아웃을 하고 싶거든요. 사실은 어머니랑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고 해야 하나. 일상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에요. 어머니는 신실하시니까 자기는 저를 전도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으세요. 일요일마다 성경 말씀하시고. 대학 다니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기 시작했는데, 아시면서 꾸준히 전도 하시고. 저는 반응하지 않죠. 불편하니까 집에도 안 내려가게 되고. 아시면서 자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전화 통화는 가끔 하긴 하는데 뭘 드셨냐, 건강 괜찮냐 정도. 일상도 나누지 않는 사이에서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갑자기 말하는 게 첫번째 걱정이고. 굉장히 신실하시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얘기까지 해야 하는 머리 아픔이 있어요. 갑자기 쓰러지시면 어쩌지하는 제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 변명을 만드는 거죠. 친한 친구들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어려움은 없었어요. 친구들한테 말하는 거는.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말하는 것도 어렵진 않았는데, 새로운 회사에서 일할 때, 새로 만나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려워요. 옛날에는 겁이 없으니까, 인식이 없으니까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변에도 말하는 게 어렵고. 사실 어머님이 제일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공개적으로 내가 오픈리 게이라고 말하면 내 가족이 먼저 알아야 하는건 아닐까. 그게 제일 고민인데. 제가 접근을 할 때 제가 확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저희 어머니는 너무 약한 사람, 꽃 같은 사람? 조심스럽게 전달해야 할 거 같고 , 그래서 부모님들 마음이 어땠는지 듣고 준비하고 싶어서 여기에 오게 됐어요.

 

어나더: 그래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나: 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래 만났던 친구랑 작년에 헤어졌는데 사실 그 친구밖에 만나보지 않아서 제 정체성을 명확히 알았던 건 아니었어요. 친구들에게 편하게 말은 했지만 나는 뭐야, 그래서 걔를 만나 그게 아니라, 그냥 얘를 만나 그게 다였거든요.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까 가족에게 말도 못했던 것 같아요. 요즘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는 게 있는데 친구한테 말했더니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 정체성으로 저를 본 게 아니었던 거죠. 저에 대해 제가 명확한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가족한테 얘기할 수 있으니까. 사실 동생한테도 얘기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 것 같아요.

 

지인: 명확한 언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한나: 나는 레즈비언이냐, 20%의 가능성으로 양성애자일 수 있는거냐, 아니면 그런 말이 필요 없이 나를 정체화 할거냐 그런 고민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고민 없이 이 사람이 좋으니까 사람을 만났는데. 친구한테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얘가 여자야. 그런 말이 친구들도 편했던 거예요.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까 얘는 왠지 또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생각을 한다거나. 그래서 공부를 한다거나 모임을 나간다고 했을 때 반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고 고민을 하게 됐어요.

 

화영: 저도 예전에 그렇게 불렀어요. 저랑 예전에 사귀었던 친구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그냥 화영 애인이라고.

 

한나: 제가 만났던 친구는 정체성이 명확했는데, 저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인 것  같아요. 저 자체도 고민을 안하고 편하게 받아들여서 제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된 거예요.

 

화영: 정리하지 마세요. 그냥 살면 되는 거지.

 

한나: 정확하게 너는 뭐야, 뭐야를 규정하고 싶다기보다는 그게 아니어도 제가 뭔지는 알아야, 부모님에게 나를 설명해야 할 쉬운 언어를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라라: 궁금한 게 있는데. 헤어지고 나서 굉장히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한나: 되게 힘들었어요. 작년 이맘때 헤어져서. 되게 오래 만나서. 7년 반 동안 만나서. 일이 벌어졌으니 받아들였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힘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다음에 누구를 만날지는 모르지만 그다음에 만나는 관계를 위해서, 부모님에게 얘기해야겠다는 여러가지 생각이 있어서.

 

어나더: 뭔가 규정이 된다면, 다음에 궁금한 게 무엇인지.

 

한나: 그전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그다지 없어서. 커밍아웃한 사람도 많지 않고. 오히려 하지 말라고. 요즘에 물어보면 편지로 말을 해서 충격을 완화한다고 말씀하기도 하고. 고기 먹다가 얘기한 것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어떤 식의 접근 방법이 좋을지 궁금해요.

 

지인: 커밍아웃 하면 어떤 말이 듣고 싶어요?

 

한나: 제일 듣고 싶은 말은 네가 행복한 방식으로 살게 된다면 좋겠다. 네가 누군가랑 있을 수 있는 게 좋다.

 

하나은행: 저도 기독교인으로 오래 살았는데, 제 딸 특성은 항상 여자를 달고 다녔어요. 그런데 몰랐어. 그냥 인기가 좋았나 보다. 그리고 어렸을 때 남자친구가 졸졸 따라다녀도 뒤도 안보더라고요. 그런데 자기도 정체성을 몰랐을 때고, 항상 여자친구가 있지만 레즈비언이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못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레즈비언이라고 했을 때, 정말로 골수적으로 문자적으로만 성경을 본다면 이해를 못 할거야. 지식보다 지혜로우신 분이라면 커밍아웃을 어느 순간에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하겠지만, 정말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시는 분이라면 서로 너무 힘들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안할 수는 없어요. 그분도 그분 나름대로 딸을 이해해야 하니까. 나도 나 나름대로 그 숙제를 안할 수는 없어요. 언젠가는 해야죠. 그걸 피하지는 마시고, 어차피 엄마랑 일상생활 안 하신다면, 그런 식으로라도 일상생활이 되니까 슬쩍 던지세요. 편지도 좋고 뭐도 좋은데 일단은 던져보는 게.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해보고.  저도 맨 처음에 막 성경책 찾고 구절 보내고 그랬는데. 그런 과정을 겪어 보는 거지.

 

한나: 지금도 보내세요.

 

하나은행: 딸이 커밍아웃하고 나서 그러는 건 또 다르지. 커밍아웃해서 부딪치면서 점점 커지는 것도 있고.

 

지인: 아까 말한 친구들도 그렇고 부모님들도 처음에 커밍아웃 들었을 때 어떻게 할 지를 몰라서 반응을 못해요. 그래서 나한테 어떻게 해줬으면 좋을지 얘기를 해주면서 커밍아웃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나더: 떡밥은 던지셨는지?

 

한나: 전혀요.

 

화영: 저는 연막 작전을 했어요. 엄마가 헷갈려 하셨을 것 같아요. 결국 저는 냄새를 많이 풍겼다고 생각했는데 식구들은 전혀 몰랐다고. 옷장에 남자 옷 가득하고 그런데. 말하기 전까진 몰라요.

 

박장군: 우리 엄마도 내가 이렇게 티가 나는 대도 몰랐어요. 지구 상에서 엄마 말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거 다 알았을 텐데.

 

하나은행: 정말 몰라. 말 안 하면 몰라. 그래도 부모라면 고민을 해야 돼요. 남들 다 아는데 엄마만 몰랐다면...

 

화영: 헤어지면 집에서 슬픔을 표시할 수 있는데, 못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집에 딱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서 있고. 식사 할 때 마지못해 나왔다가 밥만 먹고 들어가고. 동생이 창문으로 계단 내야 할 것 같다고. 너무 슬픈데, 전화도 하고 싶은데, 여동생은 남자친구랑 전화도 하고 하는데, 저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살았어요. 헤어지고 돌아오면 너무 아픈데 티를 낼 수도 없고. 공항에서도 엄마랑 여자친구가 마중 나왔는데, 돌아서는데 여자친구랑 헤어진다는 생각에 정말 눈물이 엄청 나더라고요. 근데 뒤돌아 볼 수가 없었어요.

 

박장군: 만나고 헤어지는 감정을 주변 사람한테 말하기 힘든 성소수자들이 많은데, 가족에게도 할 수 없고, 그런 답답함이 이성애자보다 큰 거 같아요. 그래서 헤어질 때 더 슬프다고 생각하는 건 주변에 공유할 수 없고, 나랑 내 애인만 존재한다고 생각이 돼요. 헤어지면 그냥 헤어지는 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사라지는.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엄마는 지금 알아가고 이해하는 단계인데, 애인이랑 같이 찍은 사진 안 보내주고 배경 사진만 보내줬어요. 엄마가 내 딸이 레즈비언이고 이런 건 아는데, 같이 있는 사진 보내주면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충격일까 봐.

 

초록이: 안 보내준 게 충격이었어요. 사진 보내 달라고 문자 보냈는데, 야자나무, 바다, 다 배경만.

 

화영; 둘 다 너무 배려했네요.

 

박장군: 집 벽에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엄마가 며칠 전에 김치 가져준다고 해서 집 비밀번호를  알려줬어요. 그런데 그냥 경비실에 맡겨 놓고 가셨는데, 알려준다고 했을 때 정말 고민이 많이 됐어요. 사진 가리고 나올까 하고. 그냥 이참에 잘됐다 하고 비밀번호 알려줬는데. 안 봐 가지고. 봤으면 사진 보내줬을 텐데.

 

어나더: 한나씬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지인: 아까 화영씨 같은 방식이 좋은 것 같아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보다, 엄마 이해 못해? 막 이런 식보다. 나는 노력했지만 힘들었고 진심이 와 닿으면,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 못할 것 같아요.

 

한나: 얼굴 보고 하는 게 더 좋은지?

 

라라: 부모 입장에서 커밍아웃 당했을 때의 상황을 듣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지금까지 참가하신 분들 쭉 보니까 같이 사는 사람들은 친밀감이 있으니까 직접 보고 말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멀리 사시는 분들은 이메일 같은 걸로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충격은 줬지만 얼굴 보고 한 건 아니니까. 부모님도 생각해보시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유튜브에도 정보도 많고. 저도 부모모임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고 참가하게 된 거니까. 그러니까 그런 방식을 사용해보시는 것도 좋은 것 같고. 그동안 부모님이 기독교인이었을 때 반응을 말씀드리면, 집을 완전히 등을 지고 나오게 된 경우도 있었고 상황마다 다 틀려요.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다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데 오히려 트랜스젠더 분들보다 엄마, 아빠가 충격이 덜하긴 한데 그래서 더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트랜스젠더는 어쩔 수 없이 그런다는 생각이 있어요. 충격은 더 해도 받아들이는 건 더 빨라요. 자식 편에서 이해해주시는 분도 있는 반면, 완전히 등을 돌리고 사시는 분들도 있어요. 종교적으로 독실하시면 부모님을 살펴보시고 하시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커밍아웃 안하고 부모 자식 관계 유지하면서 사는 것도 현명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종교적으로 크면. 이번 설에도 시부모님 가시는 교회를 갔는데, 주보에 모임 광고가 있는데 이단 척결. 맨 마지막에 동성애. 교회에서 그렇게, 새벽 교회 다니고 신실하신데 그런 모임 광고를 보면 굉장히 큰 거잖아요.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면 좀 살펴서 하시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화영: 종교를 바꾸는 것도...

 

라라: 저는 종교가 바뀌었어요 . 무교로. 그냥 시부모님 따라 교회 가기만 하고.

 

지인: 성소수자 우호적인 교회도 있으니까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를 옮기시는 것도.

 

티이락: 얼마 전에 어머니가 점을 보러 가셨는데 굉장히 용한 분이더라구요. 아드님이 딸의 탈을 쓴 여자라고. 저는 그 소리를 듣고 굉장히 놀랐고. 게이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으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은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실까 봐. 오랫동안 유학을 했고 그 전에 이혼을 하셔서 저한테 완전한 가정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가지실까 봐.

 

화영: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지를 부모님한테 확신 시켜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저도 엄마한테 난 행복하니까 다른 딸들 걱정하라고.

 

지인: 몇 학년 때부터 외국에 있었어요?

 

티이락: 초등학교 졸업하고. 어쨌든 낌새를 챈 것 같긴 한데. 처음에 유학을 1년 하고 한국에 오니까, 너무 한국에서 처럼 입으면 거기 가선 게이라고 놀림을 받는다고 하시고. 그 해엔 엄마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시고. 아니면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독일 사람이 북한에 게이가 있냐고 했는데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근데 없다고 대답하니까 엄마가 그게 말이 되냐고.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러시고. 게이바를 운영하는 분을 아시는데 “너도 같이 갈래?” 이러시고.

 

박장군: 어머니가 커밍아웃 준비하시는 건? (웃음)

 

화영: 예민하신 어머니면 스타일에서 가능성을 볼지도.

 

하나은행: 전 전혀 그런 주변 사람이 없었거든요. 아예 몰랐는데 주변에 그런 분이 있으면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티이락: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제 친구가 오면 어머니가 쟤는 여자친구 있었냐? 이러시고.

 

지인: 근데 별로 게이 같지 않아요.

 

박장군: 완전 게이인데.

 

라라: 어머님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있으신 것 같아요.

 

화영: 커밍아웃 하시고 후기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티이락: 사귀는 사람도 있고 동거도 하고 결혼 생각도 있어서 슬슬 양가 부모님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리고 예전에는 엄마와 사이가 좋고 딸 같은 아들이었는데,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제 생활을 나누지 못 하는 거예요. 밥을 먹어도 밥 먹은 사진이 둘이서 먹은 사진이고. 얼마 전에도 엄마가 우리가 예전처럼 친하지가 않다 하시고.. 저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영: 결혼... 그 구속의 세계로 왜 들어가고 싶은지.

 

티이락: 계속 같이 있고 싶어서. 용한 점쟁이가 28살에 결혼한다고. 시부야구로 이사 가려고 생각 중이에요.

 

어나더: 커밍아웃 방법은요?

 

티이락: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고쳐보려고 노력했고, 엄마와 멀어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하늘: 자녀가 부모한테 이야기를 할 때 이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부모가 빨리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안지 8년 넘어가는데 8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어요. 상담사, 의사 찾아다니며 오히려 상처를 입고. 이게 선택인지 타고 난건지 알려고 했는데 아무도 말 안 해줘서 상처만 받았어요. 자녀 분들이 말해주면 좋겠어요.

 

박장군: 근데 우리들도 우리가 선천적이라고 생각을 못해서.

 

하늘: 저는 2007년에 친구사이 가서 게이들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저는 게이 엄마니까, 게이들을 딱 보니까 이건 세상 어느 논문을 갖다 놓는다 하더라도 부모는 알아요. 그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을 얼마나 만나고 나서 썼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걸 빨리 알게 되지 못하면 부모님 혼자 너무 괴로워해요. 시간만 버리고.

 

어나더: 티이락씨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셨는지?

 

티이락: 애인도 있고 먹고살 직장도 있을 때 이야기하고 싶어요.

 

어나더: 지영씨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버님이 목사님이시라고.

 

지영: 어려움은 계속 있어요. 아빠는 그래도 괜찮은 게 혹시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그렇다면 직책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고. 엄마는 아빠보다 훨씬 신실하셔서 제가 혹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싶으면 바로 수련회에 가서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시니까 네가 달라지려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동성애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 같아요.

 

어나더: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보셨는지.

 

지영: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운 게 동성애 관련 된 이야기만 나와도 엄마하고 사이가 틀어지려는 기미가 보이니까 아예 말을 꺼낼 수가 없는 거예요.

 

어나더: 커밍아웃은 어떻게 하셨어요?

 

지영: 제가 혼자 꽁하고 있으니까, 저희 가족은 목사 집안이고 교회 다닐 때마다 그러면 안된다는 이야기만 듣고. 저는 기도하면서 혹시 달라질 수 있으면 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거든요. 근데 달라질 리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처음엔 달라지게 해 달라고 많이 했지만 안 된다는 걸 아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는데, 엄마 아빠한테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척하고 교회를 나갈 수 있냐고 반항을 많이 했거든요. 엄마 아빠는 이유도 모르고 제가 삐뚤어진 모습만 봐서 가족간에 트러블도 많았고. 저도 저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가족 회의를 하자고 하셔서 저도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커밍아웃을 했어요. 2,3년 전에.

 

어나더: 지금 부모님과 사이는?

 

지영: 얘기만 안 꺼내면 좋아요.

 

어나더: 그 사이에 부모님이 먼저 말을 꺼내신 적은?

 

지영: 방송에서 그런 내용이 나오면 제가 먼저 피해버려요. 엄마 얼굴 굳는 게 보이니까.

 

어나더: 본인은 어때요? 자기 자신이 많이 흔들릴 때 잖아요. 근데 가족 내에서도 그런 일을 겪으니까 더 많이 흔들렸을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지.

 

지영: 저는 계속 그렇게 기도를 해왔는데 안 바뀌었다는 게, 어렸을 때부터 저는 제가 이렇다는 걸 알았거든요. 꿈을 꿔도 여자 꿈을 꾸고 좋아하는 사람도 다 여자였고 남자는 전혀 없었고. 저 스스로는 떳떳하고 자신감만 있었는데.

 

라라: 언제 알게 됐어요?

 

지영: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어나더: 지금 자기 자신은 편안한 상태인가요?

 

지영: 네.

 

라라: 제가 어떤 토론장에서 들었던 건데, 그 분도 엄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요. FTM 분인데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알게 되었고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전환 치료를 굉장히 많이 받았대요. 일부러 그런 곳으로 적극적으로 가서 바뀌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대요. 가자고 하면 다 가고.

 

어나더: 지영씨는 그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영: 그러니까 평소에는 그런 이야기를 아예 안 하니까 잘 지내는데 그런 수련회만 가면 엄마랑 확 틀어져요. 엄마랑 며칠 간 이야기도 안하고. 괜찮아졌다가 수련회 가면 다시 틀어지고.

 

티이락: 저는 부모님보다 더 신실한 기독교인이에요. 학교 다닐 때도 이성애자로 돌려 달라고 기도하고. 그래서 여자친구도 사귀어 봤는데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처음 남자를 사귀었을 때 폭발적인 감정을 느꼈어요. 기독교인으로서 엄청 힘들었는데 위로를 받았던 게, 한 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선 성경을 가지고 흑인과 백인은 결혼을 하면 안된다고 했었어요. 지금은 말이 안되잖아요. 후회하고 있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그런 시대가 오게 되지 않을까. 여유를 갖게 된 계기가 저희 교회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이 왔는데, 접신 기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었어요. 그분이 제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더니 한숨을 쉬시더라구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네가 어떤 길을 가든 사랑할 것이다고 하셔서 편안해졌어요. 부모님도 미국 교회가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반대했다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안티 게이인 교회의 변화를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자기 혐오가 굉장히 강한데 지영님은 스스로 너무 떳떳해서 훌륭한 것 같아요.

 

하나은행: 우리 딸도 나 만큼은 교회를 안 다녔는데, 자기가 레즈비언인 거 어디 가서 말도 못하는 상태로 엄마가 교회 다니라고 하니까 대충 다녔어요. 근데 자기 고민에 대해서 정답을 받았대요. 하나님이 자신을 인정한다고 느꼈을 때는 정말 자유로워짐을 느꼈대요. 그것만 내 마음에 있다면 흔들림이 하나도 없고. 스스로 극복해가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회복되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는 거죠. 부모님에게 인정 받아야 하고 그런 것보다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날 사랑함을 알게 되는 게 더 중요해요. 우리 하나는 그런 걸 겪은 것 같아요. 내가 너무 힘들었는데 하나님이 날 도와주신 것 같다고. 지영씨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기도를 하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티이락: 전환치료에 관심이 많아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요, 전환치료를 개발했다고 하는 분의 아들이 게이에요. 전환치료의 창시자로 활동을 한 사람인데 자식에겐 너의 삶을 지지한다고 이야기를 했대요.

 

영한: 지영씨에 대해서. 종교인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힘든 점이 있을 때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 지역의 교회나 의사나 시민단체 같은 곳을 파악해서 알려주시면 이렇게 힘들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번에 아이다호(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행사 때 목사님이 오셔서 똑같은 성경이라도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해석을 해주시더라고요. 힘들 때는 그런 목사님에게 가서 도움을 받고, 부모님과 틀어지고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나더: 샤넬씨는 저번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보다 본인을 챙기는 게 맞겠다고 이야기해주셨는데, 지난 한 달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샤넬: 우선은 저희 어머니도 기독교 신자에요. 저도 교회를 다니다가 절에 다니는데, 바뀐 건 엄마가 교회에 더 많이 나가세요. 엄마가 행복하고 만족감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설 연휴 때 얘기를 했어요. 저랑 엄마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별로 없으니까. 차례가 끝나고 엄마랑 같이 조계사에 가서 돌아다니고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도 갔는데 가면서 얘기는 많이 못했어요. 엄마가 저 보고 몸만 크고 속은 여리다고 징그럽다고 하거든요. 엄마랑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나더: 본인에 대해선?

 

샤넬: 저에 대해선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번 모임 후에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확고한 의지가 드니까 좀 나아지구요. 서서히 좋아지는 느낌.

 

하늘: 운동은 하시는지?

 

샤넬: 겨울인데 이상하게 살이 빠지고 있어요. 혹시나 몰라서 먹는 것도 잘 먹고 운동을 하려고 해요. 무릎이 안 좋아서. 엄마도 운동을 해야 해서 같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늘: 조금씩 조금씩.

 

샤넬: 의사도 운동을 많이 하라고 해요. 건강해야 커밍아웃을 하니까 노력 중이에요.

 

어나더: 자기한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편이세요?

 

샤넬: 작년엔 힘들었던 일이 많아서. 올해는 여행도 다니고 해요.

 

라라: 희은씨 한테 궁금한 게 있어요. 희은씨가 작년에 부모모임 오시고 나서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신 이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 데이트도 하신다던데.

 

희은: 세 살 때 친엄마가 돌아가셨고, 이 사실을 스물 한 살 때 알았어요. 저는 집 나와서 고시원에 방 하나 얻어서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알고 계시는데 기독교여서 절 설득시키려고 하세요. 어릴 때부터 눈치는 채셨겠지만 하리수처럼 그런지는 모르셨던 거예요. 아셨다면 전 맞아 죽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대부분 왜곡된 성적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수면제 먹이려던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도 마음의 문을 열려는 사람은 열려고 하고 있고, 끝까지 닫으려는 사람은 안 열려고 하고 있고. 저를 이해하려면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들은 알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제가 다가가서 알려주려고 하면 짜증을 내더라구요. 그나마 받아주는 사람은 저를 자꾸 보니까.

맨 처음에는 저도 사람이니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 성소수자 지지하는 종교 찾아보고 부모모임 알아봐서 서강대에서 인권포럼 할 때 처음 참석했었어요. 그때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다른 단체에서도 와보라고 해서 갔었고. 동성애자라고 해서 트랜스젠더를 백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저도 동성애자를 백프로 이해하는 게 아니더라구요. 하느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걸 믿어요.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이해가 안 가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냥 넘기고. 솔직히 부모모임 와서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더라구요. 지금은 성공회 길찾는교회 다니고 있는데, 거기 사람들도 절 좋게 대해주고 하니까. 처음엔 힘드니까 위로 받고 싶은 마음으로 갔지만 지금은 저 또한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솔직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여기 온 거예요. 오늘 호르몬 맞고 와서 추워서 히터 틀었는데 잠이 쏟아지네요.



 

어나더: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소감 어떠셨는지?

 

아인: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커밍아웃 했을 때 엄마 아빠의 반응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미완: 지금까지 저 자신을 부정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았고, 항상 저 자신을 고민하고, 오늘은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을 해왔던 것 같아요. 여기서 많이 공감했던 게 내 잘못이 아니구나. 여기 와서 들으면서 너무 너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했구요. 오늘도 들으면서 또 위로만 너무 받고 가는 것 같아요.

 

어나더: 한나씨는 어떠셨어요?

 

한나: 저는 오늘 참관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많이 하게 되어서 놀랐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말씀 많이 나눠서 좋았어요.

 

지영: 저는 늦게 와서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또 많은 자료 찾아서 준비해서 부모님에게 논리적으로 말해야겠다, 말하는 솜씨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천을 해나가겠습니다.

 

혜경: 저는 한국에 안 살고 있고 미국에 살면서 친구인 모리랑 이야기 하는데, 한국에 부모모임 생겼을 때 너무 기뻤어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아는 아이가 저를 엄마라고 불러요. 걔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걔가 게이니까 알게 됐는데 한국에 대해서도 또 알게 됐는데 한국에 더 필요한 것 같더라구요. 기뻐요 와서. 일할 때 누가 저한테 그렇게 지지 많이 하다가 사람들이 레즈비언인 줄 알면 어떡하냐고 했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미국은 그래요. 한국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티이락: 저도 똑같이 부모님들만 말씀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한테 말하려고 했던 시점에 오게 돼서. 저도 일본에서 인권운동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초록이: 모임에 자주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걸 공부도 하고 정보를 모아서 아이들한테 힘을 실어주는 엄마가 되면서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아까도 여자들이랑 몰려 다니고 그랬는데도 우리 엄마는 모르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전혀 그런 쪽으로 생각의 문을 닫았으니까 몰랐겠죠?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낫쏘: 오늘 모임 하는 줄 모르고 있다가 방금 페이스북 보고 왔어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했었고, 문제가 약간 있어요.

 

박장군: 오늘 엄마가 같이 와줘서 너무 고맙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성도 하게 되고 배우는 것도 좋고. 특히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더 많이 필요한 모임인 것 같고 더 넓은 활동을 해야 하는 모임인 것 같아요.

 

화영: 20여 년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부모님이 이 자리에 앉아서 엄마, 아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는 게. 행복하다,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변하는 속도는 우리가 너무 느리지만, 언젠가는 커밍아웃하면 축하해주고 박수 쳐주고 했다고 이야기하면 이해를 못할 정도로 평범해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영한: 일단 함께 한다는 게 너무 기뻐요. 행복이라는 걸 자기만의 기준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떻게 할 때 행복한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준비가 되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님들은 그 다음 단계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54살인데 성소수자의 부모가 될 줄 상상도 못했어요. 이제는 이런 모임까지 생겼고, 지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힘내자는 얘기 꼭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