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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소수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부경대 신문 / 2018.11.12

 

 

부경대 신문 기고.png

 

저는 성소수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엄마, 아빠 저는 남성 동성애자예요!” 2년 전 아들이 갑작스럽게 편지로 커밍아웃할 때 쓰여 있던 첫 문장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발언을 하거나 패널로 참여해 이 문장을 내 입으로 얘기할 때면 꼭 끝까지 못하고 울먹이게 되는 말입니다.

 

2년 전까지 저는 평범한 가정의 워킹맘이었습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이 행복의 우선순위라고 여기며 살던 저에게 아이의 커밍아웃을 매우 충격적이고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 스스로가 매우 이해심 많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부하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커밍아웃 편지로 인해 한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편견과 무지로 가득한 그저 그런 부모였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아들의 커밍아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가져다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발간한 인터뷰집과 다운받아놓은 영화인 ‘바비를 위한 기도’도 볼 수 없어서 한쪽으로 미루어 놓고 며칠을 울었습니다.

 

힘든 며칠이 지나자 커밍아웃 후 부모의 무반응에 상처 받아 힘들어 하고 있을 아이가 걱정됐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책을 반복해서 읽고 영화도 보면서 내가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동안 아이가 혼자 벽장에서 느꼈을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아이가 성소수자여서 받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났고 아이가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겪었을 소외감과 외로움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동성애자임을 거부하며 힘겹게 자기부정의 시간을 보냈을 아이를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원해서 함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모임에서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만나면서 제가 가진 편견의 벽이 무너졌고 제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이 활동으로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 퀴어축제를 다니며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안아줬고 지지의 뜻을 보내기도 하고,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인권모임에도 참석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부모모임 내 부모님들과 함께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도 출판했습니다. 퀴어축제에서 난생 처음 누군가를 대놓고 혐오하는 세력들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로 2년의 시간을 보내며 성소수자에게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와 모임이 힘든 마음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고, 스스로도 그러한 도움을 받아 안정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어느정도 안정됐을 때부터 지인들에게 성소수자 부모로서의 저를 커밍아웃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아이의 정체성을 알게 됐을 때는 평생 아무에게도 말 못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친밀한 몇 명의 지인에게 얘기하고 응원을 받으니 자꾸 더 많은 지인들에게 위로받고 응원 받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제2회 부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습니다. 예상대로 퀴어축제 행사장에는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혐오세력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기 위해 사람이 모이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미 인천 퀴어축제 때 혐오세력의 심한 폭언을 겪었기에 낯설지 않았습니다.

 

혐오세력의 영역을 힘들게 지나 퀴어축제에서 부모모임 부스를 준비하던 중, 1년 전 아들의 커밍아웃을 어렵게 얘기했을 때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 참여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이자 저의 최대 지지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친구들은 부스에서 부모모임 홍보 및 후원 참여도 외쳐줬고, 심지어 퍼레이드 때 사람이 많아야 한다며 가족, 친구, 직장동료까지 동원해 퍼레이드에도 함께 해줬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적극적인 환대와 지지는 부산 퀴어축제에 참석한 다른 부모님들에게도 큰 힘이 됐고, 지금도 끊임없이 감동적인 부산 퀴어축제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타인의 소수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은 자신도 타인으로부터의 차별과 혐오를 감내하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없고, ‘그들’이 이야기 하는 소수자를 모두 배제하다보면, 결국엔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상인 극소수의 사람들’만 남을 것입니다.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꿈꾸며 저는 오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러 부모모임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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