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23일, 성소수자부모모임은 고 변희수 전 하사의 강제 전역 조치에 부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은 고 변 전 하사의 어렸을 적부터의 꿈이 지속될 수 있도록 늘 옆에서 지지하고 응원하겠다고, 함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고 변희수 전 하사에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성별 고정관념이 가장 팽배한 집단인 군을 향한 고 변 하사의 용기어린 결단과 행동은, 노동 현장에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고, 심지어 구직 과정에서조차 성별이분법적 시각에 검열당하는 것에 지쳐버린 트랜스젠더 당사자들과 그 부모에게 큰 힘이자 위안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변 전 하사의 죽음으로 그 힘과 위안과 희망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간직하고 되새기며 고인이 된 변 하사의 그 꿈을 끝까지 이어나갈 것입니다.

 

 

한편,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는 군의 입장에 분노가 치밉니다. 충분히 군 복무를 할 수 있었던 고 변희수 전 하사를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내리고, 결국 민간인으로 강제전역 시킨 것은 당신들의 처사가 아닙니까? “고인의 안타까운 소식에 애도를 표한다”는 군의 뒤이은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신들은 안타까워 할, 애도를 표할 자격이 없습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 경쟁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여과 없이 발화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성소수자들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엄연히 시민으로 살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공공연히 부정하는 지금, 선거와 정치의 이름으로 혐오가 당연시 자행되는 상황이 참담하기만 합니다. 과연 정치인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성소수자 당사자들로 하여금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체 정치권은 언제까지 혐오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어용 단체들에 눈치를 보며 성소수자들의 죽음에 침묵할 것입니까? 언제까지 ‘차별과 혐오는 안 된다’면서도 성소수자를 ‘거부할 권리’를 운운하며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입니까?

 

세계인권선언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30가지 이상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고, 이는 곧 국제인권조약으로 이어집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속한 당사국으로서 이에 핵심인 ‘평등’과 ‘차별금지’를 이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최근 10여 년간 수 차례 이어져 온 유엔의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종식 촉구에 대해 이렇다 할 응답을 하지 않아왔습니다. 또한 지난 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기관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겪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사회 내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상당수가 다양한 영역에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나 인권보장을 위한 국내 법·제도 및 정책은 미흡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심지어 한국사회 내부에서까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실태를 지적하는 작금의 상황에 정치권은 언제까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침묵의 자세로 일관할 것입니까?

 

우리 성소수자 부모들은 당사자들을 이렇게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고 또 방조하는 사회에서 살게 한 것에 너무나 미안합니다. 더 이상 우리 성소수자 부모들은 의분을 참을 수 없습니다. 성소수자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대물림되는 것을 이제는 진정 멈춰야 합니다. 더 이상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주십시오.

 

 

고 변희수 전 하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고 김기홍 활동가님을 함께 기억합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서, 비정규직 음악 교사로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로서 살아온 당신의 삶을 함께 추모합니다. 트랜스젠더 퀴어극작가로서 예술적 기량을 어김없이 발휘하며 잠재성을 보여준 우리의 동료 은용님도 함께 기억합니다. 이젠 너무 지쳤다고, 먼저 쉬겠다고 기약 없는 안녕을 전하고 스러진 고 김기홍과 고 은용 그리고 고 변희수 전 하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비통한 가슴을 두드리며,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호소하고 싶습니다.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이 나라에서도, 살아 있자, 누구든 살아 있자고 말입니다.

 

 

2021년 3월 4일

성소수자부모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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