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2 아이다호공동행동 릴레이 기자회견 발언문 2

 

(성소수자부모모임 운영위원 지월)

 

가정의 달인 5월에 유난히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는 ‘부모’입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뒤에 ‘부모’라는 이름을 내걸고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증진과 권리 수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 ‘부모’라는 단어에 위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부모’라는 표현을 앞세워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반동성애 단체이면서, ‘부모’라는 단어 앞에 ‘건강’ ‘바른’ ‘생명’ ‘윤리’라는 수식어를 달고 활개 칩니다.

 

최근에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성소수자 학생’을 명시한 제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발표한 뒤로, 이들은 교육청 앞에 근조화환을 보내고 반대 농성을 벌이며 “공교육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틀렸습니다. 성소수자에게, 공교육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교육 현장은 성소수자 아동-청소년에게 전혀 안전하지 않은, 위험한 공간이어왔습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건강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성적 소수자로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보호받기는커녕 수시로 혐오에 노출되어왔습니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비성소수자 청소년에 비해 몇 배로 높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에 발표된 학생인권종합계획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공교육을 소생하는' 환영할 만한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근친상간, 소아성애, 동물성애 등과 같이 아무 관계없는 극단적인 사례들을 동일선상에 놓아 궤변을 반복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며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매번 뻔한 패턴에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지켜야 한다, 보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되묻고 싶습니다. 과연 무엇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까? 이 말이 향해야 할 대상은 바로 당신들 자신이 아닙니까? 누구의 자녀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부모’라는 이름의 탈을 쓴 혐오로부터 모두 보호받아야 합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부모-자식 간을 지배-종속 관계로 취급하고 아이들의 주체성마저 억압하는 그들에 의해, ‘바른’ 생명‘ ’윤리‘ 그리고 ’부모‘라는 표현은 곡해되어 이미 그 본래 의의를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아니, 오히려 ’부모‘라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들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부모’와 여러 수식어들에 기댄 빈약한 논리와 자극적인 언사, 목청만 높이는 막무가내는 이제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증오선동을 일삼는 그들의 행동은 이제 누구에게나 폐단과 악행으로 읽히며 더는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바로 당신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설득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부모'로서 조언합니다. 공교육 현장을 차별과 혐오로 오염시키는 당신들의 행태는 당신들의 자녀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모는 일입니다. 성소수자가 주변에 없다고 그리고 당신의 자녀가 당연히 성소수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성소수자들이 우리 주변과 일상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국가든 성소수자 인구 비율은 약 5% 정도에 이릅니다. 한국의 경우 250만명이 넘는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비롯한 사회의 차별과 혐오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제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며 살 뿐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동료, 친구, 그리고 가족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못하는 그 '부모' 역할을, 부모의 이름을 내걸고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위한 일은 곧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성소수자 아동과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그것을 긍정하며, ‘건강’을 누리고, ‘생명’과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곧 모두의 건강과 생명과 존중을 위한 정책입니다. 다양할수록 그리고 포용할수록 우리 사회에 더욱 이롭다는 걸,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기댄 '사랑'은 결코 이로울 수 없다는 걸 부디 깨닫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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