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8일,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살아 있자, 누구든 살아 있자>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기자회견] 후보들은 들어라! 분노의 이어 말하기>에 앞서 진행된 '사전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저희는 회원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을 일정 간격으로 둘러싸고 1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월님과 나비님께서 읽어주신 발언문과, 물님께서 <분노의 이어 말하기>에서 전하신 연대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발언문 1] 먼저 떠나간 세 투사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우리들에게 이곳은 여지껏 퀴어문화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긍지를 지닌 채로 혐오에 맞서며 함께 연대하던 기쁨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곳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기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하기만 합니다. 원래 이곳은 가족에게 외면 받고 일상 곳곳에서 존재를 부정당해온 성소수자들을 직접 보듬고 위로해주던 장소였습니다. 이제는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이 우리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올 2021년은 가혹하다 못해 너무나 잔혹한 해입니다. ‘퀴어’를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 노력해온 세 사람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혐오와 폭력을 전방에서 정면으로 마주해왔던, 가장 단단하고 강하다고 여겨왔던 세 투사들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 극작가로서 무대를 통해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전하며 “농담 같은 일들, 농담이 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어” 기쁘다던 故 은용,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자 비정규직 음악교사, 소수정당 정치인이자 인권활동가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행복하다며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정치한다던 故 김기홍,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쟁취하고,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래도 끝까지” 싸우겠다던 故 변희수,
예술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군인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성소수자로서 마땅히 살고자 한국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고도 당연하게 드러냈던 이들의 잇따른 죽음이기에 더욱 사무칩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소수자들을 안아주던 이곳에서나마, 떠나간 그들을 위로해주고자 합니다. 은용, 김기홍, 변희수, 당신들이 있어 든든했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에게 우리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차별과 혐오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발언문 2] 이제는 진정 논쟁을 끝내야 할 때, 더 이상의 시간은 없다.
작년 2020년,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에게 유난히 가혹한 한해였습니다. 코로나19는 안 그래도 구직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들을 더욱 고립시켰고,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의 입학포기와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그리고 이들을 향한 혐오와 조롱은 곧 한국사회의 후퇴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를 보여주는 격이었습니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은 어떠한 반응도 내보이지 않고 그저 침묵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위안을 느꼈던 것은, 숙명여대 합격생의 씩씩한 재도전과 변희수 하사의 군에 맞서는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이성애 중심의 성별이분법적인 통념에 맞설수록, 한국사회의 백래시는 더욱 교묘하고 날카로웠습니다.
2021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제는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에서마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일종의 전략으로 삼아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졌습니다. 특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며 엄연히 시민으로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의 망언을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의 발언은 혐오가 아니라고 억울함을 표했습니다. 인권에 대한 무감각과 몰상식을 스스로 전시한 셈입니다. 이 무감각과 몰상식이 통용되고 당연시 여겨지는 한국 정치가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당신들은 동료 시민의 ‘퀴어’라는 정체성을, 단지 ‘동성애 찬성·반대’와 ‘퀴어문화축제 찬성·반대’라는 한국 정치의 여과장치로 납작하게 만들었고, ‘퀴어’ 의제를 유불리에 따라 장속에서 꺼내어 휘두르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전락시켰습니다. 누군가의 인권을 그저 선거 당락을 좌우하는 매력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당신들은 정녕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시민의 대표라는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동료 시민의 인권에 대해 집착적으로 지껄이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우리는 언제까지 목도해야 합니까?
당신들은 그저 안이하게 내뱉은 말들에 불과하더라도, 그 편견과 혐오 어린 말들은 날이 선채로 성소수자들에게 적확히 꽂힙니다. 당신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간과하며 배설하는 무감각한 말들이 성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들이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동안 성소수자들의 생명이 끊어져가고 있습니다. 과연 성소수자의 생명를 번제물 삼아 연장해온 정치 생명이 오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정치인생이 영광스러우리라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침묵으로 일관한 채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며 피하는 것도 이제는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 논쟁을 벌이는 동안, 벌써 세 명의 성소수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소수자인 우리 자녀들이 일상과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할수록, 사회는 우리 자녀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만 같아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렵기 때문에, 행동을 주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난 세 동료들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성소수자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당장 끝냅시다. 이 아프도록 지리멸렬하고 답답하게 연장되어 가는 논쟁을 이제는 진정 끝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시간 끌 수 없습니다.
[물님의 연대 발언문]
안녕하십니까? 홍경옥입니다.
자기 존엄을 위해 연대로 투쟁하며 인간으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세계 여성의 날에 여러분과 함께 하여 영광입니다. 이렇게 뜻깊은 날, 여성의 한사람으로서 제 딸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나왔습니다.
호기심도 사랑도 많던 딸은 사회성이 좋아 친구가 많았고 적응력과 습득력이 빨랐으며 무엇보다 밝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눈에 띄게 위축되었습니다. 사춘기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딸의 무기력은 커져만 갔고 흡사 우울증에 먹힌 듯 사실상 비활성화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딸의 성정체성. 저희 딸은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신의 이름을 팔아 단죄하는 이들과, 표 장사에 혈안이 된 정치꾼과,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를 일삼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여있기 때문입니다. 동물권 제정도 공론화 되는 2021년이지만,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여성 인권은 시대착오적인 역행으로 안타까운 소식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는 세간의 편견처럼 기분에 의해 성을 선택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충분한 정체화를 통해 본연의 모습을 찾는 사람입니다. 다른 몸에 갇힌 스스로를 출산하는 고난이도의 고통을 헤아려 주시길 당부합니다. 까닭에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향한 편견과 혐오를 멈춰 주십시오!! 오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공교육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실시해 주십시오!! 특혜로 오역하지 말며 인권 회복을 위한 정책에 대해 진솔하게 물어봐 주십시오!! 아울러 제도권 밖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제공해 주십시오!!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잔인함을 거둬 주십시오!!
자신의 벽을 허물어 세상의 다리를 자처한 동료들을 애도합니다. 그 다리에 다리가 되어 다음 세대 여성을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한 달 후 새롭게 시작되는 이곳 정치의 눈과 귀는 소수자를 위해 모아져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올바른 인권의 역사가 기록되도록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끝까지 투쟁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것으로 저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