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2 아이다호공동행동 릴레이 기자회견 발언문1 

 

(성소수자부모모임 대표 하늘) 

 

차별금지법이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에 반한다는 염수정 추기경님께 전합니다.

 

염 추기경님,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교회 신자입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아이를 둔 부모입니다. 생명주일을 맞아 지난 4월 21일 발표하신 담화문에 대해 제가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을 설명하시며 ‘동성애’와 ‘비혼 동거’, ‘사실혼’을 이에 반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혼전동거와 사실혼을 동성애와 일치시켜 설명하셨지요. 또한 “동성애 행위에는 참된 일치와 생명 출산, 남녀 간의 상호보완성이라는 의미와 가치”가 빠져 있으며, 이성 간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이 혼인과 가정의 고유한 가치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성 간 혼인은 자녀 출산이 불가능하며, 혹여나 자녀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 아빠와 한 엄마를 갖고 싶은 자녀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추기경님,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이란 과연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가톨릭의 신앙과 윤리관에 근거한 가정과 혼인이란 이성애자 여성과 이성애자 남성이 만나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고, 이들의 성관계는 자녀 출산을 위해서만 기능해야 하는지요. 성서에 하느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쓰여 있더라도, 그리고 이를 근거로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할지라도, 사람은 무조건 이성애적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며 여성 혹은 남성으로만 나뉘어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은 정말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를 교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성소수자들을 잘못 창조하셨다고 봐야 하는 겁니까?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하느님의 실수입니까?

 

가톨릭 신자인 저로서는 추기경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시편 139장 1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 구절대로, 모든 인간은 제각각 고유하면서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로서 서로 다르게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객관적인 무질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한 질서’입니다. 게다가 우리 인간은 굳이 이성 결합이 아니고도 충분히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되었지요.

 

오히려 가정과 혼인에 관한 신앙과 윤리관이 막상 이성 간의 혼인이나 성적 관계와 행위에만 머물러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교회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육체 그 자체에 한정되어 있다는 모순처럼 보여집니다. 영적 가치와 개별 인간의 고유하고 무한한 가치를 역설하면서도 막상 창조주의 섭리를 단지 생식 능력만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건 아닐지요.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단순히 “동성애 행위”라는 성적 관계-행위로 결부시킬 만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특정 성별간 성행위만으로 연상하고 그것이 마치 성적 지향의 핵심인 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곧 스스로의 성애적 개념이 ‘행위’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인격’과 ‘성향’은 그렇게 말로써 손쉽게 분리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 성향’을 비롯한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인간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 가장 중심이 되는 하나입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그저 그 자체로 고유하게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된 것이지요. 심지어 이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추기경님께서 언급한 “염색체나 신체 발달상의 어떤 이유로 이런 구분이 모호한” “예외적인 경우”의 존재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왜 생물학적인 성적 구별에만 치중하고 그밖에 다른 존재들은 예외 취급을 하십니까? 그렇게 “예외”라고 말씀하시는 게 바로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입니다.

 

추기경님께 여쭙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사회적 소수자인 성소수자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교회로부터 받은 차별과 배제에 대해서 파악은 하고 있습니까?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동성애 성향 때문에 내적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친절과 존중, 관심과 배려”를 과연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까? 이제껏 한국 가톨릭교회는 ‘동성애’는 무질서하다는 이유로 교회 내 성소수자를 없는 존재로 취급해왔습니다. 사실 추기경님이 지적한 “차별이나 폭력적인 언사나 행동”의 주체는 바로 한국 가톨릭교회입니다. 누군가의 존재와 그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부정하고, 그 존재를 파악은커녕 인지조차 못하는 게 바로 차별이자 폭력입니다. 이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담화문이 쓰였겠지요. 이 담화문도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이라는 걸 인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지조차 어렵다면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추기경의 언어가 교회의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지, 이 담화문을 접한 신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그리고 성소수자 신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주일을 맞아 추기경님께서 이런 폭력적인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교회는 ‘생명’의 가치로부터 격절되어 있음을 반증한 셈이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여쭙습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추기경님께서 강조하신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관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생전 소수자와 약자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과 연대하신 예수님의 삶과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는 전혀 닮아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예수님의 생애에 비추어 한번 사려 깊은 성찰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가 소수자와 약자들과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건 아닌지,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해온 건 아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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