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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부모모임

인터뷰

[심층인터뷰] 양성애자 아들을 둔 아버지 - 청년미소

청년미소님은 양성애자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날 아들이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면서부터 청년미소님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던져왔습니다. 이젠 머리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마음으로도 공감해야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내 자식이어서 지지하는 것을 너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해 행동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하시네요.

 

인터뷰 한 사람 / 모리, 오소리

인터뷰 한 날짜 / 20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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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다시 보게 됐어요. 머릿속으로만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간이 되더라고요. 성소수자와 관련된 문제 뿐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요. 아는 게 많은 사람들도 실제로 자기에게 그 일이 닥쳤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로 주변 사람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보게 되고. 그래서 성소수자 문제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리 / 먼저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청년미소 / 저는 열여덟 살, 대학교 1학년 양성애자 아들을 둔 아버지 청년미소입니다.

 

 

 

1. 커밍아웃 이전

 

모리 / 자녀분이 성소수자인 걸 알기 전에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청년미소 /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성소수자라는 말도 듣지를 못했습니다. 제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 정보 매체를 통해서 듣는 것이 극히 드물고,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학생 운동 접하면서 성소수자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전에 이런 일은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저희 집이 다가구 주택에 살았는데, 여성 두 분이 살고 계셨어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분들이 동성애자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그 중 한 분은 남장 하듯이 하고 다니고 다른 분은 여성처럼 하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그게 74년도 즈음이에요.

 

모리 / 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 안 하신 거죠?

 

청년미소 / 전혀 몰랐어요.

 

모리 / 학교 다니실 때도 주변에 분명 성소수자가 있었을 텐데.

 

청년미소 /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저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가 있어요. 돌이켜 보니까. 저한테 우리 둘이 교복 입고 가방 매고 있는 그림도 그려다 주고. 우리 집에도 와보고 싶어 하고. 그 친구는 지금은 여성이랑 결혼하고 사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모리 / 그림을 받으실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청년미소 /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걔가 나중에 고3 때도 저 말고 다른 남자애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집에도 찾아가고, 선물도 하고. 얼굴도 하얬었어요.

 

모리 / 그 후로는요?

 

청년미소 / 군대 갔다 오고 나서 학생운동 하면서 사회에 눈을 뜨게 되고, 민주주의와 인권, 소수자 그런 개념을 알게 됐어요. 장애인이란 말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옛날엔 봉사, 소경, 그런 말을 썼거든요. 요새는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그런 말을 쓰잖아요. 성소수자라는 개념도 알게 되고. 그게 88년도 89년도 즈음이에요.

 

모리 / 그 당시에도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청년미소 / 네 있었어요. 그것도 신부님한테 들었어요. 부산에 카톨릭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그 당시에 광주 민주화 항쟁, 저는 83년도에 봤는데, 87년도, 88년도 즈음에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해서 상영을 했어요. 그때 신부님이 인권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성소수자도 있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모리 / 그때는 성소수자가 아니라 동성애자라는 말로 불렸죠?

 

청년미소 / 그렇죠. 성소수자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부산은 좀 늦었죠.

 

모리 / 저는 빠른 것 같은데.

 

청년미소 / 그래요? 성소수자에 대한 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좀 더 넓은 범위의 인권에 대해서도 그 보다 서울에 비해 부산은 좀 늦은 편이었죠. 저는 중학교 때부터 민주화 항쟁이나 독재타도, 인권 같은 이야기 하시던 장기려 박사라던가 함석헌씨 같은 분들 만나러 서울에도 가고 그랬어요. 함석헌씨 같은 경우는 부산에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와서 강연도 하고 그랬어요. 장기려 박사가 청십자 운동 처음 한 사람이고 의료보험 처음 도입한 분이거든요. 함석헌씨는 퀘이커 교도인데 인권운동 쪽으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장준하씨도. 이런 분들은 문익환 목사보다 조금 이전 사람들이에요.

 

모리 / 그럼 그 분들 강의 같은 걸 들으시면서 인권에 대해 배우게 되신 거네요.

 

청년미소 / 네. 그때부터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서는 알게 됐는데 동성애나 이런 것에 대해선 몰랐죠.

 

모리 / 그럼 그 이후로는 접하실 기회가 있으셨어요?

 

청년미소 / 대학을 졸업하고 저희 처가 부산 여성회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동성애에 대해 조금 알게 됐죠. 근데 구체적으로는 몰랐어요. 그 당시엔 겉으로 드러난 게 전혀 없었어요.

 

모리 /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셨으면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청년미소 / 잘 모르겠어요. 저희 처도 학생 운동 한 사람인데, 저한테 일부러 말을 안 했었는지는 몰라도 그 당시엔 그런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하고, 공장 같은 곳에 취직해서 돈 못 받은 사람들. 지금 노동 상담소에서 하는 역할을 거기서 주로 한 거죠. 그때는 가정폭력 이런 개념도 없었어요. 남성이 여성을 구타해도 된다는 식으로. 경찰에서도 남의 가정사라고 전혀 제재하지 않았고.

 

모리 / 그럼 2000년도 즈음에 홍석천이 커밍아웃 했을 땐 어떠셨나요?

 

청년미소 / 처음 나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저런 사람도 있나.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 남성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성관계를 하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관계도 하고 싶을 텐데 안 하고 사는 건지, 그게 아주 궁금했었어요. 저도 그랬고. 그 당시에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남자끼리 어떻게 사는 거지? 입으로만 성관계를 하나? 항문성교를 한다고 하는 건 나중에 알게 됐어요. 한 4, 5년 뒤에. 왜냐면 제 처가 연극을 했는데, 연극 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들이 이상하게 부산 범일동에 자꾸 가는 거예요. 그 당시에도 거기에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이 있었어요. 그래서 알고 보니까 ‘아, 그런 분들이 거기서 모이는구나.’ 그리고 그 당시에 보림극장이라고 유명했었는데, 거기가 옛날에는 1류였는데 3류로 전락하면서 ‘화장실마다 구멍이 파져 있다’ 그런 소문이 났어요. 그럼 왜 구멍이 파져 있느냐? 남성들이 항문으로 그런 걸 한다더라, 좀 갈구하는 사람들이 보림극장에 가서 구멍이 난 곳에 기다리고 있으면 누가 신호를 받고서 들어가서 그런 짓을 한다더라, 이렇게.

 

모리 /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청년미소 / 지금은 극장이 없어졌죠. 없어진지 제법 오래 됐는데, 없어지고 나서는 보림극장 바로 뒤편에 삼일극장이라고 있어요. 보림극장에서 삼일극장으로 넘어갔어요. 그래서 삼일극장에서 한다더라, 근데 이제 삼일극장도 없어졌어요. 여객업이나 숙박 업소 이런 게 발달하면서.

 

모리 / 근데 이런 정보는 다 어디서 들으세요?

 

청년미소 / 보통은 군대 갔다 오고 그러면 군대에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리고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듣는 거죠. 그 당시에 더 놀랐던 건 여성들이 뭘 한다는 걸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들.

 

모리 / 레즈비언이 있을 거라는 걸 상상을 못하셨다는 거죠?

 

청년미소 / 네. 그러면서 떠오른 게 옛날에 옆 방에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 생각을 해보니까 이상하게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둘이서 손 잡고 다니고. 분명히 여성인데. 대놓고 말은 못하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났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몰랐던 거죠. 그 때 남자처럼 하고 다니던 분이 직장생활 하고 나머지 한 분이 집에서 가사노동 하고 그러셨어요.

 

모리 / 되게 가까운 곳에 있었네요?

 

청년미소 / 네. 그리고 이후에 우리 처를 통해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이런 쪽의 사람들이 많더라, 카톨릭 신부님도 많다더라, 스님들도 많다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죠.

 

모리 / 그건 어디서 들으셨어요?

 

청년미소 / 우리 처가 상담소에 있으면서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거죠. 섹스의 정의가 그 당시에 정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리 / 신기하네요. 부산의 옛날 이야기어서 새로워요. 하리수가 처음 나왔을 땐 어떠셨어요?

 

청년미소 / 그 때는 성소수자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고, 그 전에 홍석천씨도 나왔었기 때문에 인권은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근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트랜스젠더는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성이 여성이 될 수 있나? 여성이 남성이 된다는 건 또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요. 트랜스젠더는 남성이 여성 되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리 / 자녀분이 어릴 땐 어땠나요? 지금 돌아보면 신호나 힌트 같은 걸로 생각되는 게 있으신가요?

 

청년미소 / 전혀 몰랐고요. 돌이켜보면 이런 건 있었어요. 왜 저렇게 유약하지? 왜 맞고도 가만있을까? 왜 남한테 저렇게 잘할까? 남한테 주기를 잘해요. 경제관념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욕심도 없고. 친구들 데려오는 거 좋아하고. 그리고 자폐는 아닌데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요, 자기가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하려고 하고. 그리고 톤을 높여서 야단치면 감당을 못해요. 어쩔 줄을 모르고. 그게 동성애와 관련되는 건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전혀 생각도 못 했었어요.

 

 

 

2. 커밍아웃 /아웃팅

 

모리 / 자녀가 성소수자인 걸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청년미소 / 아들이 커밍아웃하면서 알게 됐죠. “아버지 저 양성애자예요"라고. 가족 중에 저한테 가장 먼저 말했어요. 방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가 제가 들어갔는데, 머뭇거리더니 자기가 양성애자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고2 때요.

 

모리 / 그냥 대뜸 그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청년미소 / 그냥 대뜸. 저는 자녀들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해도 하려고 하고. 되도록이면 대화를 통해서 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모리 / 어떻게 대답을 하셨어요?

 

청년미소 / 처음에는 아주 짧은 순간인데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 순간에는 아주 당황했지만, 그 전에 말해온 게 있었던 거예요. 인권이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그래서 “양성애자인 게 왜? 그게 왜 문제야?”라고 바로 말했어요. 왜냐면 상처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성소수자인 게 맞다면 아빠는 인정할 수 있다, 왜냐면 늘 말했듯이 아빠는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면 네 삶은 네가 살아갈 거고, 너는 독립된 인격체다. 겪어야 할 제약이 많겠지만, 살아가면서 하나씩 해결해보자.”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고서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했어요.

 

모리 / 아드님은 어떤 얘기를 했나요?

 

청년미소 / 자기가 왜 양성애자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했죠. 중학교 때만 해도 여자 친구를 만났어요. 선물도 주고받고 하는데 그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근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친구를 좋아하게 됐는데, 이상하게 자기 느낌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는 거예요. 여성에게 못 느끼는 것을 친구한테 느꼈다는 거예요. 친구가 듬직하고 덩치도 컸대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 우리 민이는 양성애자인데 좀 여성적인 것 같아요.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머릿속에 온통 그냥 그 애 생각만 나고. 순간순간마다 쉬는 시간마다 가서 뭐하나 보고 싶고. 옆에 가고 싶고. 스치기만 해도 전기가 찌릿 찌릿 하듯이 느낌이 온다든지. 그래서 저도 이게 단순히 친구들끼리의 우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죠.

 

모리 / 그럼 청년미소님은 어떤 얘기를 하셨어요?

 

청년미소 / 제가 그 전에 성소수자 관련 강의를 듣긴 했었지만, 머릿속에서만 강의를 들었던 거지 내 자식이 그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었어요. 이게 질병이나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이해를 못했었고, 다만 그런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억압 당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우리 민이가 정말 양성애자가 맞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도 꺼내면서 “아빠도 이런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여자랑 결혼하고 살더라.”, “아빠는 이해한다, 그런데 성소수자가 맞는지 일단 알아보자.” 그렇게 말을 했죠. 병원에 가자는 말은 안 했는데, 알아보자는 말은 했어요. 사실 그 말이 결국 병원에 가서 알아보자는 말이긴 했죠.

 

모리 / 걱정이 되는 부분은 없으셨어요? 솔직한 심정은 어떠셨나요?

 

청년미소 / ‘야 이 일을 어떡하나’강의도 듣고 인권도 말하고 다니고 자식들한테도 그런 이야기 했었는데 우리 아들이 이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거죠. 내 일이 아닌 것들은 얘기도 잘 들어주고 그랬는데, 하필 내 아들이냐, 우리 민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정말로 확실한 건지 알아보고자 했던 거예요. 알아보자고 하면서 저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려고 한 거죠. 인터넷도 뒤지고 책도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처럼 부모모임의 자료집이나 가이드북 같은 게 있었다면 좀 달랐겠죠. 인터넷에 검색하면 온통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도배해 놓은 글이 많다는 거죠.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 찬. 전환 치료에 대해서도 저 혼자 막 알아봤었어요. 가능성이 있다는 글들. 그런데 이게 수적으로 밀리는 거예요. 진보신당 이런 곳에서 나온 성소수자 친화적인 자료들을 봐도 별로 안 와 닿더라고요. 인권이다 이런 얘기만 하지 정신질환이 아니다, 뭐 이런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어요. 전환 치료도 알아본다고 여러 군데 알아봤었어요. 부산에도 몇 군데 있어서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어요. 전문가는 아니고 교회기반인데, 기도를 통해서 바뀔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모리 / 그런 걸 알아보는 걸 그만두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청년미소 / 알아보다가 이게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걸 논문을 보고 알게 되어서 그만두게 되었죠.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전환 치료가 안 되는 거구나. 저도 예전에 교회를 다녀 봤기 때문에, 워낙 기독교 보수단체에 꼴통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안수 기도 한다고 사람을 가두고 두들겨 패고 사망에 이르게 하고 그런 걸 많이 봤거든요. 막상 전화를 해서 전환치료의 방법이 어떤 건지 물어보면 무조건 오라고만 하지 구체적으로 대답을 안 해줘요.

 

모리 / 전환치료에 대해 알아보는 걸 그만두신 후엔 어떠셨어요?

 

청년미소 / 그렇게 하다가 유튜브에서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라든가 여러가지 성소수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료들을 봤죠. 그러다보니 그 동안은 슬쩍슬쩍 지나갔던 영화 속 장면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범일동을 가봤어요. 가봤더니 여러 모습들이 있는 거예요. 사람도 많아요. 이게 커밍아웃 한 이후로 정말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인데, 저는 이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게 커밍아웃 한 후에 얼마 안 있다가 민이가 교내 백일장에서 학교에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집안에도 알리고.

 

모리 / 방송에도 출연하셨죠?

 

청년미소 / 네. 우리 민이가 성격이 밝아서 그런지 그걸 통해서 방송에도 나가게 됐어요. 피디수첩에서 부모랑 같이 나올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민이가 알게 된 거죠. 민이가 자기가 출연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민낯으로. 그래서 제가 주변 진보적인 단체 사람들에게 알아봤어요. 다들 나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모리 / 왜요?

 

청년미소 / 저 활동하는데도 지장 있고, 자식을 오히려 망친다고, 큰일 난다고들 하더라고요. 일단 나이가 어리니까 여기서 그치는 게 현명하다, 더 나가면 다칠 수 있다, 사회가 그걸 용인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아니다, 그런 얘기가 많았어요. 근데 우리 민이가 저한테 성소수자에 대한 얘기를 해줬는데, 그 얘기가 너무 구체적으로 제게 다가왔어요. 주위에서 너무 억압 받고, 부모가 자식을 정신병원에 가두는 경우,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는 경우, 자살했다는 얘기도 듣고. 피디수첩에서 취재하면서 부산 영도에서 자살한 성소수자를 찾아갔는데 그 분도 알고 보니 민이가 아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그제야 저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지지를 하게 된 거죠. 저도 용기를 내서 방송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왕 나간다면 갇힌 새장 문을 열고 날아갈 수 있도록 민낯으로 나가보자, 민이가 자기는 감당할 수 있다 했고 저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건 어떤 의미냐면, 감정적으로 우리 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민낯으로 나가고, 이후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활동도 하자는 결심도 한 거죠.

 

 

 

3. 갈등 /고민

 

모리 / 커밍아웃과 관련해서 상담을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세요? 상담사의 태도가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청년미소 / 정신과 의사를 만나봤어요. 민이랑 같이 간 건 아니고 저 혼자 부산 대동병원에 가봤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큰일 날 거다, 항문이 벌어져서 똥을 질질 쌀 거다, 잘못하면 유전 된다고도 이야기하더라고요. 의사가 하는 이야기가 그 동안 자료 찾아본 거랑 너무 달라서 관뒀어요.

 

모리 / 그런 이야기 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청년미소 / 불쾌했죠.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세밀하고 예민해야 하는 건데, 이 사람이 정신과 의사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성애가 정신병이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심지어 유전되는 질병이라고. 근데 그 당시에는 제가 확신이 없던 때니까, 전환 치료 한다는 목사 말도 듣고 유전 된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굿을 할까도 생각했었어요. 목사가 귀신에 씌어서 그렇다고 했는데, 유전이라고 하니까 정말로 집안에 귀신이 붙어 있는 건가 싶어서. 집안 내력 중에 남성이 남성을 좋아한다든지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 사람이 있었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죠. 그러니까 이게 머릿속에만 있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만으론 힘들다는 거예요.

 

모리 / 굿은 안 하신 거죠?

 

청년미소 / 안 했죠. (웃음)

 

모리 / 자녀분이 커밍아웃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그때와는 다르게 대응했을 것 같은 게 있으신가요?

 

청년미소 / 지금 상태 같으면 병원 가보자고 한다든가, 무식하게 굿을 해볼까 생각한다든가 하면서 아이에게 상처는 안 줬겠죠.

 

모리 / 그게 상처가 된 것 같으세요?

 

청년미소 / 네. 상처가 됐을 것 같아요. 지금 제 결론은 이거예요. 어떤 분야든 간에 부모가 자식이랑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그래야만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죠. 평소에 대화를 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이런 문제라 하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고, 설사 해결이 안 되더라도 부모와 적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 때 자살을 막을 수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실제로 죽지 않더라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더 많고요.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이 가고 너무 다르니까 누구한테 애기도 못하고, 최후의 보루인 부모님과도 사이가 나빠져버리면 갈 곳이 없게 되는 거죠.

 

모리 / 부모 자식 간에 대화를 잘 하는 팁이 있을까요?

 

청년미소 / 관심이죠. 우리 큰 애 같은 경우에는 딸인데 민이랑 7년 차이가 나요. 가장 먼저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줬어요. 아빠랑 가깝게 느끼게.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줘야죠. 작은 부분도 칭찬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어떤 것이든 이야기할 수 있게. 학교에서 왕따 당해도 부모한테 얘기 못하는 경우 많잖아요. 어떤 경우도 이야기해야 해요.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요. 예를 들면 아이가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어요. 언제든 당할 수 있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힘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성이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폭력에는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도 있다, 이런 얘기들이 바탕이 됐던 것 같아요. 부모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그 어떤 얘기든 간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딸이랑 연애나 성에 대한 얘기도 언제든 해요. 속옷 선물도 해주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외적인 껍데기는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모리 / 폭력과 성에 대한 교육을 다 하신 거네요. 성교육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청년미소 /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희 처가가 농장을 했는데 가면 동물들이 많았어요. 개도 있고 소도 있고. 그러면 짝짓기 하는 걸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건 자연스러운 경우다. 인간도 똑같다. 숨기는 게 아니라 그런 행위를 통해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생명이 태어난다. 사랑 속에서. 그런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저한테 이야기하는데 그리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리 /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그 전부터 대화를 많이 하셨나요?

 

청년미소 / 제가 2012년에 행성인 활동가의 성소수자 인권 강의를 들었어요. 민이가 커밍아웃 하기 전이었는데, 그 강의를 듣고 혹시나 우리 아이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두 번 정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는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들이 계를 하잖아요. 거기 가서도 “혹시 우리 애들이나 조카들 중에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쪽에 관심을 평상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모리 / 부모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전부터 해왔다면 커밍아웃 하기가 쉬웠을 것 같아요.

 

청년미소 /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르긴 하지만, 일단 부모님들이 교육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성소수자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게 첫 째고, 두 번째로는 지식에서 머무르지 말고 진정으로 자식에게 공감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아니면 나중에 흔들릴 수 있어요. 워낙 많은 공격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도 전환치료니 뭐니 여러 군데 알아봤잖아요? 충분히 공감을 하지 않으면 또 그런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봐요.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를 많이 나눠야죠. 자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단계에 와있고, 어떤 상태인지, 정말로 행복한지, 부모를 믿고 있는지, 내가 자식에게 사랑을 정확하게 전달했는지도 확인해보고요.

 

 

 

4. 화해 /해소

 

모리 / 커밍아웃 이후 자녀와의 관계에서 달라진 게 있나요?

 

청년미소 / 많죠. 더 애정이 깊어졌어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머릿속 사랑과 가슴속 사랑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머릿속에 지식이 많아봐야 소용없다. 어머니들이 뱃속에서 태아를 길러서 불이 났을 때 애를 구하려고 불구덩이 뛰어들듯이, 그런 게 가슴속 사랑이라는 걸 느끼게 됐죠.

 

모리 / 피디수첩에 나오시면서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신 셈인데, 그 후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있거나 한 게 있으신가요?

 

청년미소 / 두 가지였어요.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잘하셨다, 큰 용기였다, 형보고 나도 자식이 그렇게 되면 나도 그렇게 할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말해줬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어요. 같이 진보 운동 하는 사람들도 왜 했냐고, 쉬운 일이 아니라고.

 

모리 / 그 분들은 주로 어떤 걱정을 했어요?

 

청년미소 / 자식이 피해 입는다는 거예요. 나는 극복할 수 있는데 자식이 극복 못하면 어쩔 거냐는 거죠. 말하고 다니다가 차별 받으면 어쩔 거냐. 그냥 조용히 자기들끼리 만나서 살면 되지 괜히 이야기해서 왕따 당하고 그럴 이유가 있냐고. 근데 말하지 않는 건 가두고 속이는 거잖아요? 그냥 내 자식만 생각하는 거고요. 사실 우리 부모모임 오는 분들 중에도 “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기서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죠.

 

모리 / 그래도 걱정은 되실 것 같아요.

 

청년미소 / 그런 얘기 들으면서 민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까. 물어봤더니 제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아빠 덕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민이 친구들을 다 제 자식같이 생각하고 자주 놀러 오라고 하거든요. 먹을 것도 사주고, 잘 곳이 없다고 하면 우리 집에 데려오라고 하고. 그렇게 하니까 친구들이 학교에서 민이를 많이 방어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에 덩치 큰 애도 있고 그랬거든요.

 

모리 / 다행이네요. 사람들이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커밍아웃 이후 청년미소님의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었나요?

 

청년미소 / 많이 있었어요. 사람을 다시 보게 됐어요. 머릿속으로만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간이 되더라고요. 성소수자와 관련된 문제 뿐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요. 아는 게 많은 사람들도 실제로 자기에게 그 일이 닥쳤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로 주변 사람을 걱정해주는 사람을 보게 되고. 그래서 성소수자 문제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상적으로만 알게 되면 자기 자식이 성소수자인 걸 알게 됐을 때 말 그대로 전환치료 시키고, 가두고, 때리고, 학교 안 보내고 할 거거든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 제 주위에 있었어요. 나중에 이야기 하더라고요. 자기는 애를 교회에 보내서 지금은 동성애 안 한다고요. 제가 봤을 때 그 친구는 정말로 가슴에 두근거리고 뜨거운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게 안 보여요.

 

모리 / 가족이나 친척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청년미소 / 이제는 다 알고요. ‘너희도 나 같은 부모가 될 수 있다, 그때에 자식이 소유물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절대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성소수자는 어느 집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죠. 퀴어문화축제에 삼만 명 온 이야기도 해주고, 외국 자료도 좀 보라고 하고. 그렇게 다 얘기를 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니다 보니 제 친구 중에 하나가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있는데, 제수씨가 저한테 자기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조만간 민이랑 같이 한번 만나보기로 했어요.

 

모리 / 청년미소님 본인은 그 이후에 어떻게 변하신 것 같으세요?

 

청년미소 / 그 전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고 느껴요. 머릿속에만 있는 인권이었는데, 이제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라든가 여러 다른 소수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예를 들어 그 전에는 시각 장애인 같은 경우에 건널목 건널 때 그냥 바라보기만 했는데 지금은 같이 건너드리고. 어떨 때는 다리 불편한 분을 엎고 육교를 건넌 적도 있었어요. 마음속으로만 했지 행동은 못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해요.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의 아니게 신용불량자가 되고, 본의 아니게 거리에 노숙자 된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전에도 측은지심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단돈 만원이라도 있으면 줘요.

 

 

 

5. 부모모임

 

모리 / 부모모임에는 왜 참여하시게 됐나요?

 

청년미소 /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이랑 연락만 주고받고 카톡방에만 있었지 정기모임에 참석한 건 얼마 안 됐는데, 부모모임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만든 분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부모모임에서 만든 자료들도 참 소중하고. 정말 크게 느낀 건, 저랑 민이 같은 경우는 좀 쉽게 넘어왔는데 이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부모와 자식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부모와 자식 입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대화하고, 공감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부모모임의 성장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부모님들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부산에 살아서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잘 못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족하다면 회비라도 많이 내고 싶어요.

 

모리 / 부모모임에서 힘을 많이 받으시나요?

 

청년미소 / 힘을 많이 받죠. 일단 여기 와서 많은 것들을 배우잖아요. 자녀들과 부모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는지를 들을 수 있어요. 조언도 듣고요. 커밍아웃 과정에서 성소수자 당사자 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부모님도 힘들고 아프다는 말을 모임에서 듣게 된 게 저한테 많은 위로가 됐어요. 부모님들도 혼자만 있으면 힘들텐데, 모여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게 참 감동이죠.

 

모리 / 처음 부모모임과 만나셨을 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어떤 것 같으세요?

 

청년미소 / 부모모임은 지금은 사람 수도 많아졌고, 카톡방에서 대화도 활발해진 것 같아요. 활동도 많이 하고 있고요. 속도가 붙고 있는 것 같아요.

 

모리 / 청년미소님은 어떻게 변하신 것 같으세요?

 

청년미소 / 요즘은 활동을 좀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할 때는 힘들고 용기가 별로 없는데 부모모임에서 다른 분들과 함께 하면 더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부모모임의 활동 폭이 넓어져서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고, 기자들에게도 연락이 오고, 대중들의 관심도 얻게 되고. 그러다보면 저처럼 자식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모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요.

 

 

 

6 미래

 

모리 / 우리 사회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청년미소 /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더 많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 인권 운동, 인권단체 이름도 모르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냥 성소수자들끼리 모여서 거기에 안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이나 학교에서의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다 같이 목소리를 내야 돼요. 일하다가 아웃팅 당해도 부당해고 당하지 않을 권리, 동성 커플 중에 한 사람이 아팠을 때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권리 이런 게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나만 잘 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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