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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부모모임

인터뷰

[심층인터뷰]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뽀미


"너의 성생활을 누가 그렇게 궁금해 해?"

딸의 커밍아웃에 엄마는 쉽게 지지했습니다. 부모의 지지를 받은 딸도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레즈비언인 딸을 지지하는 것과, 딸이 살아갈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문득 딸이 세상으로부터 느낄 고립감을 경험한 엄마는, 그날 밤 딸의 손을 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뽀미님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한 사람 / 샤넬, 모리

인터뷰 한 날짜 /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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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잠에서 문득 깨면 혹시 이건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긴 해. 그런데 부모모임 에서 많은 당사자들을 만났잖아. 너무 멀쩡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재능 있고. 만나다 보니까 ‘이건 내가 꿈이 아니어도 되는 거구나.’라고 나는 치유를 받았어. 있는 그대로 잘살게 하자.”

 

 

 

1. 커밍아웃 이전

 

샤넬 / 커밍아웃 이전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뽀미 / “TV에서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는데 안티가 너무 많고 다시 지상파에 나오지도 못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말을 매체를 통해서 듣는 정도였고. 그 사람이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뭐 그게 그렇게 파장이 커야 돼? 걔를 비난해야 돼? 걔가 다시 지상파에 나오지 못할 만큼 죄를 지은건가? 도박하는 사람도 있고 약물에 취한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보다 그 친구가 그렇게 뭘 잘못건가?’ 라고 생각해서 동의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분개도 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참 안타깝다,’ 그 사람 개인에게는 그 정도로만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 하리수에 대해서는 그때는 사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어. 왜냐면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그게 뭔지를 잘 몰랐고, 그렇게 바꾸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도 잘 몰랐고. 일단은 무지의 상태였다고 보면 되는데, 성형 수술을 한 모습이니까 자연스럽지 않잖아. 그 외형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 그런 거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샤넬 / 혹시 친구 분들하고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관한 이야기를 했나요? 그때 분위기는?

 

뽀미 / 음... 나는 친구랑 “쟤가 이상하네. 안 이상하네. 너는 괜찮니? 안 괜찮니?” 이런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없어. 사실 보기는 봤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샤넬 / 네. 그렇군요. 다음 질문이에요. 자녀분이 어릴 적을 돌아봤을 때 성소수자임을 알리는 힌트나 신호가 있었나요?

 

뽀미 / 지금 생각하면 힌트나 신호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이 돼. 내 딸이 어렸을 때는 남자애로 태어났어야 됐나? 라고 생각할 만큼 인형을 갖고 논 적이 없고 4살 이전에만 분홍색 빨간색을 가리지 않고 치마를 입었고, 그 이후에는 거의 남자애들이 입는 옷을 입고 노는 것도 그렇고. 뭐라고 해야하지? 걸음걸이도 그랬고. 별로 말리지는 않았지만...

 

샤넬 / 그때 당시 뽀미님의 느낌은 어떠셨는지?

 

뽀미 / 그때는 그것이 힌트인지 전혀 생각을 못했지. 왜냐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나 개념이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내 딸의 그러한 보여지는 행동이 성소수자의 어떤 힌트와 연결이 되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아이가 그렇게 놀고 지냈던 게 결과적으로 조금 다르다, 결국은 다르게 태어났다, 그게 신호였을까?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옛날에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서 화장실에 가야하면 여자화장실에 사람이 너무 너무 많았는데, 그 아이는 커트머리를 짧게 치고 옷차림도 소년처럼 하고 있어서 아빠가 너는 남자화장실에 갔다 와도 된다며 들어갔다 나왔지. 물론 어렸을 때니까 그게 가능했는데. 그럴 만큼 그아이는 너 남자니? 너 여자니? 그런 질문을 늘상 받으면서 자랐어. 지금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개념을 아니까 만약에 그런 개념으로 보면, “나는 엄마, 내 안에 남자가 있나봐,”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

 

 

 

2. 커밍아웃 / 아웃팅

 

샤넬 / 자녀가 성소수자인걸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뽀미 /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여자아이를 무척 좋아했어. 애가 같은 반 친구였는데, 그냥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춘기 때 우정 싸움이니 뭐니 이정도로만 파악을 했었지. 근데 하루는 조금 우울한 모습을 며칠 보이길래, “너는 요즘 할 일도 많고 학교생활에 집중해야하는데 왜 그렇게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많은 것들이 흔들리니?” 라고 약간 질책을 했더니,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그리고 나서 책상 위에 있는 편지를 보게 됐는데, 편지 내용이 연애편지 비슷한 거야. 그래서 “지금 이런 거에 네가 몰두하면 안 되지.”그랬더니, 그때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 친구 이름이 송이였어. “엄마 그거 송이한테 보내는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이러고서 확 토라지더니 울더라고. 그때도 난“이 편지를 네가 여자한테 보내든 남자한테 보내든 그것이 중요해? 지금은 네가 할일이 너무 많아.”하면서 진지하게 안 들었어. 지금 애가 커서 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엄마 그때 나는 여자가 좋다고 커밍아웃한 거야.”라고 말을 해서 ‘아 그때가 그거였어?’라고 생각한 거지. 나는 그것이 커밍아웃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거지. 일반적으로 사춘기에 겪는 친구와의 갈등? 이 정도로만 파악했지, 애가 레즈비언? 이런 개념으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어.

 

샤넬 / 이어가는 질문이에요. 자녀가 커밍아웃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뽀미 / 그때가 17살 때? 자기는 고민, 고민 했겠지. 홧김에 말했지만,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다고 했고, 금방 헤어졌지만 고등학교 때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고, 아마도 저 나름대로 파악하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했던 것 같아. 스스로 본인의 지향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했던 실험? 그러다 본인이 알게 돼서 그때 이야기를 한 거겠지. 본인 스스로 알아보려고 노력과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

 

샤넬 / 커밍아웃 후 그때 상황이 어떠했나요?

 

뽀미 / 송이라는 아이의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당신 딸이 이상하다. 당신 딸의 아마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 딸을 괴롭히고 있다. 내 딸은 아니다. 전학을 가 달라.”그래서 내가 뭐랬냐면 “전학가려면 당신들이 가.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앞으로 어떻게 확립되어갈지 전혀 모르는데. 당신 딸을 위해서 내 딸보고 전학을 가라고 하는 거는 폭력이다. 당신이 가라.”그랬는데 결국 그런 소문이 은연중에 학교에 다 퍼지게 된 거야. 딸아이는 예고를 다녔는데, 만화과 인원이 3-40명 되는데 1,2,3학년이 그대로 반이 가는 거였어. 그래서 1학년 때의 소문이 그대로 3년 동안 유지되면서... 지금 생각하면 생활을 잘 해내기가 어려웠고 친구를 사귀기가 너무 어려웠을 텐데, 참 용해, 내 딸!

 

샤넬 / 많이 힘들었겠어요. 그 어미니 때문에.

 

뽀미 /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어. 사실 나는 그때, 17살 때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면서 애가 굉장히 힘들어하고, 사춘기를 너무 혹독하게 지낸다고 판단을 하면서도, 말은 차갑게 했어. “네가 네 말을 인정받으려면 지금 네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진지하게 얘기를 다시하자.”이 정도까지만 얘기를 하고 별로 그런 말을 안들은 척 하고 지냈던 거 같아. 근데 부모들은 그런 말들을 들으면 절대 잊히지가 않지. 열일곱 때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열여덟, 열아홉? 계속해서 애가 재미있고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남아있었고, 사실은 바뀌겠지, 달라지겠지, 한때의 치기어린 생각과 행동, 이런 거겠지 라고 생각을 했고, ‘스스로 덮어두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 ‘꿈 일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많아. 그러고서는 20살이 되면서 대학을 갔지. 자기 실력으로 당당하게 대학을 가면서 암울한 고등학교 생활을 청산 하고, 훨씬 본인을 표현하더라고. 그동안 연애니 뭐니 이런 게 금기되었었는데 성인이 되면서 그 금기를 스스로 풀더라고. 술도 마시고 여러 여자아이들을 만나고 다니고. 그때 정식으로 “엄마, 나는 진짜 여자가 좋아. 여러 가지 경험을 했는데 여자가 좋아.”

 

샤넬 / 그때 이야기를 듣고 반응은?

 

뽀미 / 진짜 안 바뀌는 건가? 그리고 그때부터 성소수자나 동성애자나 이런 거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처음부터 내게는 동성애가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나는 이렇게 생각한 거 같아. ‘그녀는 소수자로 사는 게 힘들었는데, 엄마로서 그게 뭐 그렇게 힘들어?’라고 반응한 거지. “너의 성생활에 대해서 누가 그렇게 궁금해 하니? 상관없지 않아?”생활은 생활대로 섹스는 섹스대로 그렇게 분리를 할 수 있다고 난 딸에게 얘기를 한 거야. 삶과 섹스라이프가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그때는 몰랐어. 이 아이가 자기가 소수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배척되는 느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3. 갈등 / 고민

 

샤넬 / 성소수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셨는지?

 

뽀미 / 아니. 나는 그런 매체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어. 왜나면 딸를 바꾸겠다는 생각도 안했고 딸이 그렇다고 그렇다는 걸로 받아들인다는 거지. 근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받아들인다는 말의 농도를 말하고 싶은 거야. 우리 집 안에서 “그래 네가 레즈비언이야?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돼.”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게 온전히 받아들이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물론 내 딸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아이야.” 라고 말을 했어. 엄마도 오케이, 아빠도 오케이, 동생은 어렸으니까 크게 반응을 안 했고 그래서 자기는 우리 집에서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행복한 아이였던 거지. 그래서 그것만으로 나는 좋은 엄마고 우리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며 20살, 21살, 22살을 보냈어. 그리고 그 아이가 누구랑 만나서 연애를 하는지, 얼마 만에 깨지는지, 몇 명의 아이를 또 만나는지 들었고, 왜 그런 식의 연애 스타일을 가져야 하는지 그거에 대해서는 많이 안타까웠고 조언도 해줬고 했지만, 너무 누구를 사귀는 거에 집착을 했어. 연애하는 대상이 없으면 애가 불안해하고 외로워하고 우울해 했어. 그걸 나는 많이 나무랐어. “네 인생에 연애가 전부야?”사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사람을 사귀고 헤어지면 곧바로 또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는 게 정상인데, 헤어지면 또 얼마 안가서 커뮤니티에 가서 상대를 찾고. 누가 옆에 없으면 마치 불완전한 것처럼 애가 사람에 집착을 했어. 뭔가 결핍되어 있는 거처럼.

 

샤넬 / 그럴 때 다른 분 조언을 받거나 그러셨는지요?

 

뽀미 / 아니, 조언을 들은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사실 어느 날 문득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꽉 차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붐비지 않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마치 나와 저들이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단절을 느꼈어. 그때 나의 사회생활이 너무나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고립되어서 저들 속에 섞이지 못했다는 괴리감이. ‘아, 내 딸이 이런 걸 느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깨달음이 온 거야.

 

샤넬 / 그때의 느낌이 어떠셨나요?

 

뽀미 / 너무 너무 미안했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을 했어. 딱 이거야. “너의 성생활을 누가 그렇게 궁금해 해? 그냥 여자랑 만나서 연애를 해. 걔랑 섹스를 해도 괜찮아. 그런데 다른 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적으로 하고 살아.”내가 그렇게 주장을 했는데, 그게 얼마나 많은 오류였는지 알게 된 거야. 그 오류는, 성생활과 자기의 삶의 중요한 부분인데 마치 그것은 그냥 하나의 행위로 치부하고 분리를 시키라고 말한 거지. 누구를 사귀고 누구를 좋아하고 하는 정서가 누구에게 사랑을 받고 하는 감정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데, 생활은 정상적으로 하고 연애만 소수자의 행위를 하라고, “아무도 너의 연애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뭐 별로 특별할 것 없지 않느냐.”고 설득한 거야. 아마 내 딸을 절망했을 거야. 이해한다며 받아들인다며 결국은 엄마가 하는 말은 숨어서 드러내놓지 말고 그렇게 살라는 말이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차라리 이해 못 한다고 했으면 말이나 안하지 그치? 딸이 포기하지 않고 엄마에게 수없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려 애썼던 기억도 있고, 본인이 살면서 다른 다수와 달라서 겪는 괴리감, 격리감, 차별과 편견 때문에 당당할 수 없어서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도 하고, 예를 들면 대학 친구들에게 본인을 커밍아웃을 했을 때 받아들이는 친구하고만 이야기한다든지, 수업의 창작과제물 내용이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라든지. 그래서 자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어떤 사람에게 집착했고, 자기를 이해 못할 것 같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 하면 헤어지고 또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서 많은 에너지를 쏟는 생활이 반복이 되는 게, 결국은 이 구조 안에서 제 자리를 잡아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되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거야.

 

 

 

4. 화해 / 해소

 

샤넬 / 그 이후 자녀와의 관계는요?

 

뽀미 / 지하철에서 성적지향과는 다른 처절한 외로움을 내가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서 내 딸을 만났을 때 내가 딸한테 사과를 했어. “단지 그대로 살아도 돼. 지지를 한다고 말을 했지만 온통 너를 이해하지 못했구나. 엄마가. 이 사회 안에서 소수자로서 갖고 있는 불안감, 그래서 네가 누구라도 빨리 자기를 이해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했던 열정. 그리고 잘 안됐을 때의 슬픔. 근데 그걸 이해 못하고 마치 연애중독자처럼 엄마가 몰아붙이고, ‘연애질만 하다가 너는 언제 성장할래?’ 라고 비난도 했었고, 그래야 아이를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던, 너를 온전히 이해를 못했던 그 상황을 엄마가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어. 둘이 손을 잡고 펑펑 울었어.

 

샤넬 / 마음이 정말 아프셨겠어요.

 

뽀미 / 어, 마음이 정말 아팠어. 내 딸이 진짜 울더라고. “엄마가 그거를 이해해줄 줄은 몰랐어. 사실은 엄마한테 뭔가를 말을 하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엄마는 겉으로만 이해한다고 하는데 나는 뭘 이해해달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핵심을 끄집어낼 수가 없었어.”무지 답답했대. 그런데 자기가 하지 못했던 것을 엄마가 깨달아주고 말해줘서 자기는 너무 고맙다고 펑펑 울었어. 그 시간이, 커밍아웃한 17살 그 이후 내가 그걸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게 23살이니까 6년이 걸린 거지. 거의 겉핥기로. 사실은 말로만은 이해했다고 볼 수 없어. 오히려, 이해를 안 한다고 하면 걔는 불만이 있을 텐데, 이해는 하는데 진짜 내 마음을 몰라줬으니 걔는 얼마나 답답했겠어? 어쩌면 일종의 배신이지. 똑똑한 척만 하고.

 

샤넬 / 커밍아웃 이후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뽀미 / 딸과의 관계가 달라졌어. 그렇게 이해를 하고서,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자리를 찾기 위해서 문제가 사회의 구조라면 구조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된다. 그 방향으로 내 딸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어.

 

샤넬 / 어떻게 대화를 했나요?

 

뽀미 / 수업 시간에 나왔던 한 줄 문장, 그 안에는 성소수자의 인권 뿐 아니라 여성의 인권, 사람답게 제대로 사는 게 뭔지, 자기의 삶을 어떤 색으로 칠해나가면서 사는 게 잘하는 건지, 과연 뭐가 행복하다는 건지,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어. 내 딸 꿈은 작가가 되는 건데, 만화를 그리는 것도 스토리가 있어야 되니까 그 스토리를 채우는 건데, 자기가 그리고 싶은 실질적인 거는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사는, 올바른 것이 뭔지, 정의가 뭔지, 이런 쪽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잡게 된 거야. 전에도 항상 어떤 작품을 내고 공모전에서 당선이 될 때도 운동권적인 시각이 있었어. 소외되고 남과 같지 않은 거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멘토와 멘티 사이가 되면서 친구가 됐어. 엄마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훨씬 더 풍부하게 하고. 대화를 하고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고 이런 사이가 된 거지. 근데 소수자의 문제만 바라본 건 아니야. 훨씬 깊게 친구가 됐다고 했어. 근데 그래도 이 아이는 엄마가 있어도 엄마가 다 채워주지는 안잖아. 자기 짝을 찾고 싶어 하는 거지. 전에는 오래 못 가고 또 찾아 나서고 이랬다고 한다면, 파트너를 찾는 방법도 바뀌었어. 자기와 대화가 되는 사람, 자기가 이념도 갖고 혹시라도 인권 운동을 하더라도 같이 동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한 거지. 자기가 훨씬 좋아하는 사람을. 왜 그동안 그토록 놀고 떠들고 웃고 이랬던 친구들하고 오래 못 갔는지를 알게 됐어. 자기가 어떤 류의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고 놀고 마시고 쓰는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 거지.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건 좋은데 그 친구들을 만나면 오래 못가더라, 그래서 어떤 짝이 내 짝인가를 스케치를 할 때 그 전의 경험이 도움이 됐던 거고, 그리고 지금 스물다섯이야. 지금은 짝이 몇 개월 없었다고 해서 죽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물론 주기적으로 외로움은 있어. 본연적인 외로움이니깐 어쩔 수 없는데 그래도 이제는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지금은 좋은 친구를 만났고, 같이 성장을 하고 있고, 잘 지내. 예쁘게. 그 영향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받았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진지한 모습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지내 수 있는 파트너를 원했구나, 이런 걸 느낀 것 같아.

 

샤넬 / 주변 인간관계의 변화는 있나요?

 

뽀미 / 딸이 스스로 커밍아웃하기를 원해. 내게 뿐만이 아니라. 그래서 졸업과 무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서 한 자리를 얻어내고 당당하게 가족이외의 다른 가족들에게 밝히고 싶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할머니가 걱정이 되나 봐. 할머니가 기독교에 너무 빠져 있고 연세도 있고. 만약에 할머니한테 커밍아웃을 하면 매일 교회 가서 내 손녀를 구원해 주소서 울고불고 할 것 같아서 아빠도 일단 할머니는 모르게 하고 싶다고 하시고.

 

샤넬 / 그거에 관한 갈등은 있나요?

 

뽀미 / 아니 지금 갈등은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의 인생이고 너는 너의 인생이고. 다른 작은 아버지, 삼촌, 이모 그들 한태도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려고 하지. 눈치를 챈 사람도 있어. 근데 어느 누가 부모가 괜찮다는데 토를 달겠어. 토를 달더라도 무슨 영향력이 있겠어. 전혀 걱정하지 말고 네가 원할 때 커밍아웃을 하라고 했지. “시끄러워 지면 어떡해?”하면서 본인이 걱정을 해. 소수자 친구들은 남의 배려를 너무 많이 해. 자기 때문에 불편해질까봐, 자기 때문에 시끄러워질까봐. 나는 그것은 네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얘기를 해. 그거는 너의 부모가 괜찮다고 그러면 누구라도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고. 엄마 아빠가 알아서 정리를 해준다고. 사실은 그러니 든든한 지지자는 지지자지.

 

 

 

5. 부모모임

 

샤넬 / 부모모임에 참가하게 되신 이유가 뭔가요?

 

뽀미 / 딸하고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 차별 이런 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딸이나 나나 여성이니까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말로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 이거지. 결국은. 그리고 딸에게도 “네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이니 너도 앞으로 나서서 운동을 해야 한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연애 타령이나 하고 찔찔 울래?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너는 주저앉아 있으면 안 돼.”하고 독려를 했어. “생각보다 너네 너무 왕따지? 너희끼리 모였을 때는 즐거운데 흩어져 있으면 방콕하고 있지? 홀로 자기만의 섬을 만들고 있더라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우울해져. 그리고 생각이 너무 많아져. 그래서 부추긴 거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네 방에서 뛰쳐나와야 해. 그리고 네가 제대로 인권운동을 하려면 네 목소리가 커지려면 너는 네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해.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네가 하려는 거는 뭐야? 그러면 만화가로서 너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해. 유명한 사람이 하는 커밍아웃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커밍아웃은 엄청난 차이야. 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니? 그렇다면 돼야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야지.”그렇게 이야기 했어.

 

샤넬 / 부모모임에 같이 오신 거죠?

 

뽀미 / 그때서야 내가 인터넷에서 찾았어. 왜냐면 작년에 퀴퍼에서 부모모임 플랜카드를 처음 봤어. 어? 부모모모임이 있네? 깜짝 놀랐어.

 

샤넬 / 검색을 하셔셔 보신 거예요?

 

뽀미 / 아니 플랜카드를 보면서 있었네 까지는 알았어.

 

샤넬 / 퀴퍼에는 따님이랑 같이 오셨나요?

 

뽀미 / 응. 퀴퍼에는 딸이 초대를 해서 엄마, 아빠, 막내까지 행진을 같이 했지.

 

샤넬 / 따님은 부모모임을 몰랐어요?

 

뽀미 / 걔는 행성인이 있는지도 몰랐어. 이런 인권단체가 있는지도 몰랐어. 왜지? 나 깜짝 놀랬어. 그러고서는 맨날 그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사람 찾아요. 애인 찾아요. 다른 운동도 하긴 했는데 무슨 카페인데 그림도 그려주고 디자인도 해주는 곳이라고, 막 이런 모임 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했지만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성소수자나 이런 개념의 인권운동을 잘 몰랐어. 나한테도 그런 게 있는 걸 말하지 않았잖아? 나는 얘가 혼자서 너무 오래 있는 시간, 왜냐하면 자기가 하는 만화작업 이라는 게 혼자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혼자가 자꾸 익숙해지는 거야. 그러면 자꾸 사고가 경직이 되거든. 그래서 퀴퍼 때 부모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거의 세 달 후에. 그리고 나에게 변화가 있었지. 퀴퍼 바로 전에 내가 회사를 잠시 그만 둔 적이 있었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 거야. 5월 1일부터 내가 쉬었어. 그래서 퀴퍼도 가게 된 거야. 퀴퍼도 항상 토요일인데, 나는 항상 토요일에도 일을 하는 직업이었으니까 갈수가 없었지. 퀴퍼에 네 식구가 다 같이 가서 퍼레이드 하고, 놀고. 와주어서 좋아하더라고.

 

샤넬 / 퀴퍼도 여러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면 반대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의 광경을 보고 느낌은 어떠하셨는지?

 

뽀미 / 나는 너무 깜짝 놀랐잖아. 축제 분위기여서 너무 깜짝 놀랐어.

 

샤넬 / 그럼 퀴퍼를 어떻게 생각 하셨어요. 맨 처음에?

 

뽀미 / 나는 무슨 궐기대회를 하나 했어. 집회를 하니까 반대파도 나와서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줄 알았지. 근데 갔는데 뭐 음악소리 짱짱하고 옷차림이고 뭐, 아 축제구나, ‘아!! 맞아 그래 이거야. 너희가 주눅들 이유가 뭐가 있어, 축제는 축제니까 즐겨야지. 그래 오늘은 너희들이 제대로 즐기는 구나.’너무 흐뭇하고, 어우 내가 박수 쳐 줬다니까. 너무 좋았어. 난 궐기대회인 줄 알고 갔어. (웃음)

 

샤넬 / 아버님도 같이 오셨는데 좋아하셨는지요?

 

뽀미 / 좋아했지. 뭐 얼굴에 스티커도 붙이고. 축제분위기니깐. 덥고 배고프고 그랬지만. 나는 그렇게 축제형식으로 열리는데 동의하고 즐거운 것이 너무 좋아. 그래서 부모모임을 검색해서 딸에게 얘기를 했어. 엄마가 그때 여성의 전화에서 공부를 해야 해서 시간이 없어서 딸을 먼저 보낸 거야. 그 다음에 내가 참석 한 거야. “행성인에서 활동을 좀 하지. 왜 부모모임이야?”이랬는데, “나는 부모모임이 훨씬 더 탄탄해져야할 것 같아. 그게 먼저 필요한 거 같아. 사실은 엄마 같은 부모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그렇게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

 

샤넬 / 부모모임에 와보시니 어떠세요?

 

뽀미 / 부모가 너무 없어서. 너무 실망 했어. 어 진짜 꼴이 이 꼴이구나. 그런 마음이 아주 아렸지. 만약에 많았으면 한 발만 담그고 있었을지도 몰라. 너무 없어서. 어으. 나는 건강상의 문제가 좀 있어서 한 발만 담글 수 있었으면 한 발만 담그고 있었을 텐데, 어우 너무 없으니까 건강이고 모고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너무 다른 분들이 힘 빠질 거 같아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끌고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 중이야.

 

샤넬 / 활동을 하고 시간이 지나고 하면서 치유가 되기도 하셨나요?

 

뽀미 / 치유 됐지. 부모들은 문득문득 소수자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소수자이기 때문에 받아야 되는, 감수해야하는 불편함, 그걸 이 아이가 끌고 안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착잡하지.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잠에서 문득 깨면 혹시 이건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긴 해. 그런데 부모모임에서 많은 당사자들을 만났잖아. 너무 멀쩡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재능 있고. 만나다 보니까 ‘이건 내가 꿈이 아니어도 되는 거구나.’라고 나는 치유를 받았어. 있는 그대로 잘살게 하자. 근데 마음으로는 내가 먼저 죽을 텐데, 그래서 얘는 일상적으로 남편이나 아가나 혈연의 가족을 만들어내지 못할 텐데, 물론 애인을 사귀겠지만 그 애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한바탕 싸우고 헤어져!! 하고 끝나는 관계가 되고 하는데, 그러면 얘 혼자 남으면 어쩌지? 이런 불안이 아직 있어. 지금도. 어쩌면 내가 죽을 때 마음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 이 애를 위해서 계획하고 있어. 더군다나 전문직으로 자기 자리를 탄탄히 갖고 누구라도 무시하지 못하는 커리어를 얘가 갖기를 원해. 그걸 만들어 주고 싶어. 그러면 좀 덜 걱정되지 않을까? 물론 인간에 대한 상처는 그런 걸로 치유가 되진 않지만.

 

 

6. 미래

 

샤넬 / 미래에 대한 질문이에요.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뽀미 /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건 결혼제도를 바꿔야해. 제도적으로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투쟁을 벌여야지. 이성 간에도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그런 상황이 무지 많고 혼자 사는 사람도 무지 많지만 굳이 결혼이라는 어떤 약속, 약속보다는 조금 더 끈끈한, 뭐가 있을까? 동성이지만 같이 살겠다는 어떤 두 사람 스스로의 제도적인 확인? 그걸 하겠다는데, 나라에서 어떤 복지를 이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그것까지 막아서 되겠는가? 이거야. 성소수자들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고 가족의 개념으로 평화롭게 살 권리를 법으로 인정해주는 방법 중 가장 원론적인 것이 동성결혼 법제화라고 나는 생각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이건 이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야. 누구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지 아닌지 하는 사실은. 단순히 커밍아웃을 받아들인다는 거와 그들의 삶을 이해 한다는 건 다른 거야. 많은 사람이 커밍아웃을 하는데“알았어. 받아들일게.”까지만도 어렵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한다는 건 그들이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인정받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죽기 전에 동성결혼 법제화는 꼭 이루어 놓고 싶어. 그리고 진짜 내가 다른 부모나 누구한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그저 지지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거만으로는 진정한 지지가 아니고, 그들의 삶을 온통 제대로 이해를 해서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말로만 받아들인다고 해서 오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만으로는 30% 밖에 이 아이들이 힘을 못 받는다는 것. 그 속, 본질을 이해해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알아야 이 아이와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다는 거지.

 

샤넬 /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지요?

 

뽀미 / 당사자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당사자들이 더 당당하게 많은 숫자가 나서야, 울어야 뭐가 문제인지 뭐가 배고픈지를 알아. 근데 울지도 않으면서 해달라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본인들이 박차고 나서야 그리고 주장해야 그거에 대해서 받쳐준다고.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대신 나서주지 않아. 받쳐 주는 거뿐이야. 선봉에 서야 하는 건 당사자들인데 당사자들이 너무 숨어 있다는 거지. 그러면서 징징 거린다는 거지. 나는 그게 너무 싫다는 거지. 그 말을 하고 싶어. 부모들이 더 나서 줘야한다기보다, 결국은 부모는 지켜봐. 계속 지켜보고 관찰을 해. 예전에 독립운동 할 때도 그랬듯이. 당사자들이 나서야 지지자들도 같이 갑니다.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울어야한다고. 변화는 걸, 원하는 걸 정확히 얻어야 한다면 본인이 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샤넬 / 마지막 질문이에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 게 있나요?

 

뽀미 / 그건 있지. 내가 소수자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들이 어쩌면 그들한테는 그것도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는. 약간의 자성? 그런 거지. 삶으로 보면 훨씬 더 재밌지. 사는 맛이 나지.

 

샤넬 / 어떤 사는 맛이요?

 

뽀미 / 내가 갖고 있는 것만을 향유하고 살 수 있었지만, 당연하게 갖고 있는 것을 못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스스로 깨달은 건데. 나만의 삶을 위해서 갈 수 있었던 인생의 길인데 나와 더불어 혹은 인간답게 사는 인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거에 좀 더 남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이런 것도. 내 개인으로 보면 좋은 일을 하는 거니까. 누구나 살아갈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머지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 신나는 일이지.

 

샤넬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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